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71)
영화이야기 (8)
07 (15)
06 (11)
03+04+05 (5)
00+01+02 (3)
95~99 (2)
90~94 (5)
80년대 (3)
70년대 (1)
60년대 (1)
50년대 (0)
40년대 (1)
20+30년대 (0)
1895년~10년대 (0)
감독이야기 (1)
배우이야기 (1)
음악이야기 (0)
광고이야기 (1)
방송이야기 (3)
찌라시이야기 (1)
미드 (4)
포르노 프로젝트 (5)
배너아이콘 (0)



  1. 2008/02/16
    판의 미로(2006) 프리뷰 : 한 소녀의 피흘리는 소망에 대한 이야기 (8)
  2. 2007/12/26
    2007년 흥행영화, 개봉영화 & 내가 본 영화, 그리고 추천작 (6)
  3. 2007/11/28
    뉴라이트, 쇼아, 그리고 낮은 목소리 (2)
  4. 2007/11/22
    미수다와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강간대국의 정체 (2)
  5. 2007/11/06
    트윈픽스, 메멘토, 박하사탕과 돌이킬 수 없는 - 내내님과의 대화 (6)
  6. 2007/11/03
    미국이라는 수용소에서 푸는 홀로코스트 퍼즐 - 인사이드 맨 (2006) (2)
  7. 2007/11/01
    연예인은 공인(公人)이다 - 성시경,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발언에 부쳐 (8)
  8. 2007/10/24
    어설픈 버디무비, 어설픈 로드무비, 어설픈 코미디, 어설픈 사회비판 - 쏜다 (2007) 프리뷰
  9. 2007/10/23
    반전 강박증 - [리턴](2007) 단상들
  10. 2007/10/23
    비현실의 리얼리티 : 일상과 기적, 그리고 구원 - [오아시스](2002) (2)
  11. 2007/10/22
    욕망과 정치, 그리고 상징적 절망 - [돌이킬 수 없는] (2002) (2)
  12. 2007/10/22
    내 영화의 사춘기, [열혈남아](1987) (6)
  13. 2007/10/21
    내 영화의 유년, [시네마 천국](1988) (5)
  14. 2007/10/06
    이야기 없는 서스펜스/결혼이라는 불가능한 미션 - 미션임파서블 3 (2006) 리뷰 (2)
  15. 2007/09/15
    디워 게임 재개 - 유령들의 축구경기는 이제 그만하자. (5)
  16. 2007/09/05
    관음증에 대한 낭만적인 해석 - [디스터비아] 프리뷰 (8)
  17. 2007/08/20
    한 연쇄살인마의 따스한 에세이 ; [덱스터](Dexter, 2006) 시즌 1 프리뷰 (4)
  18. 2007/06/28
    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 타르코프스키 (2)
  19. 2007/06/28
    비극적 영웅 잭 바우어, [24] 시즌 6 최종회 단상 (4)
  20. 2007/06/20
    꿈과 죽음, 그리고 여행 - [아이다호] 단상 (6)
  21. 2007/06/19
    비밀의 햇빛, 세속과 구원 - [밀양] 단상 (8)
  22. 2007/06/04
    SF 사채 드라마 - [쩐의 전쟁] 단상 (4)
  23. 2007/05/28
    2007년 60회 칸 영화제 수상작 (8)
  24. 2007/05/20
    스타크래프트2 - 게임의 사회학 (6)
  25. 2007/05/18
    냉전 회고적 첩보액션으로서의 24 - [24] season 6 episode 22 메모 (6)
  26. 2007/05/15
    잭 바우어, 저주받은 사나이 - [24] 6-21 메모 (6)
  27. 2007/05/05
    이영애와 무한도전 (18)
  28. 2007/05/02
    제국주의 멜러드라마 - <피아노> 얼개 (2)
  29. 2007/04/30
    가장 아름다운 커플영화 - [스탠리와 아이리스] 프리뷰 (6)
  30. 2007/04/28
    축구와 섹스의 유사성에 대한 단상 [PP연재 5] (8)
#. [오퍼나지] 개봉에 즈음에서 예전에 썼던 글을 옮겨옵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합니다.
스포일러 (전혀, 혹은 거의)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El Laberinto Del Fauno, 2006)
길예르모 델 토로





[판의 미로]는 정말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다.


 

0. 스페인내전

나에게 스페인내전은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로 기억될 뿐이다.
독재자 프랑코의 승리(1939년 3월 28일 프랑코군의 마드리드 입성)로 끝난 스페인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으로 불리었고, 이후 37년간의 프랑코 독재로 이어진다. 이게 지금 내가 찾아본 스페인내전에 대한 '상식'적인 내용이다.

 
1. 갑자기 스페인내전에 관심이 생긴 건 오로지 [판의 미로] 덕분이다.

영화는 스페인내전의 상처를 한 소녀의 눈으로 꿈꾸듯 바라본다. 소녀의 눈에 비친 그 내전은 판타지의 반대편에 있으며, 판타지는 전쟁의 반대편에 있다. 다만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살을 맞대고 있는 '현실'이다. 꿈과 현실, 현실과 꿈, 이 대립적인 이분법을 영화는 매혹적인 방식으로 뛰어넘는다.

현실은 꿈에 기대어 있으며, 꿈은 다시 현실 속에서 피어난다.


2. 소망에 관한 이야기

추악한 현실에서 꿈같은 판타지를 만나게 하는 건 '소망'이다.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소망이 아니다.
그 소망은 현실 속에서 '피흘리는' 소망이다.

[판의 미로]가 보여주는 판타지는 물론 [해리포터]의 소년 취향의 신나는 모험담도 아니고, [반지의 제왕] 같은 웅장한 서사 스펙터클도 아니다. 다만 여기에는 꿈과 현실을 만나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과연 그 둘은 만날 수 있을까?
 

3. [판의 미로]는 [안네의 일기] 판타지 버전이다.

소녀의 희망이 실현되는 순간, 그 소녀는 현실에는 없고, 현실이 그 소녀에게 강요했던 잔인함은 나무로 피어난다. 그 나무는 진실로 보고자 하는 자에게만 그 푸르름을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푸름과 초록 속에서 우리는 소녀의 희생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 소녀의 간절한 바람과 눈물이 지금/여기에서 어떤 의미로 다시 피어나고 있는지를 우리는 근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걸작이다.
놓치지 마시길.

 


p.s.
켄 로치의 [랜드 & 프리덤]을 나는 이제까지 보지 않고 있었다. 왠지 지루하고, 교훈적이지 않을까.. 그런 염려가 마음 속에 있었던 거지. 가급적 빨리 켄 로치의 [랜드 & 프리덤] 볼 생각이다. 물론 이 영화도 스페인내전을 다룬 영화다.


Trackback 0 And Comment 8
간단히 정리.
이하 '영화진흥위원회' '2007년 1~11월 영화산업통계'의 자료를 참조.
* 주 1. 따라서 2007년 12월 개봉작은 제외(영진위 자료 분류 표준상 다음해로 이월.)
* 주 2. 서울 기준



0. 개요 : 개봉작, 상영작, 점유율 (약 47 : 53. 작년 대비 점유율 역전)

한국
상영작 111편 (개봉작 104편) vs. 작년 106편(개봉작 100편)
서울관객수 2천5십1만명 (20,511,796) (점유율 46.8 %) vs. 2천8백만 (61.3%)
서울총매출 1369억 (점유율 46.7%)

외국
상영작 273편 (개봉작 255편) vs. 작년 227편(개봉작 219편)
서울관객수 2천3백3십7만명 (23,306,698) (점유율 53.2%) vs. 1천7백6십5만명 (38.7%)
서울총매출 1559억 (서울매출액점유율 53.3%)



1. top 10 흥행작

전체
1. 트랜스포머(Transformers) : 228만
2. 디워(D-War) : 209만
3. 화려한 휴가(May 18) : 198만
4.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Pirates of the Caribbean: At Worlds End) : 148만
5. 스파이더맨 3(Spider-Man 3) : 144만
6.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 113만
7. 300(300) : 107만
8. 다이 하드 4 : 죽어도 산다(Live Free or Die Hard) : 99만
9. 미녀는 괴로워(200 Pounds Beauty) : 96만 (2006년 관객 96만 포함 누적 193만)
10. 슈렉3(Shrek 3) : 94만


한국
1. 디워 : 209만
2. 화려한 휴가 : 198만
3. 미녀는 괴로워 : 96만 (2006년 96만. 누적 193만) 
4. 그 놈 목소리 : 82만
5. 식객 : 78만
6. 1번가의 기적 : 69만
7. 바르게 살자 : 66만
8. 극락도 살인사건 : 64만
9. 바람피기 좋은 날 : 56만
10. 밀양 : 56만


외국
1. 트랜스포머 : 228만
2.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 148만
3. 스파이더맨 3 : 144만
4.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 113만
5. 300 : 107만
6. 다이 하드 4 : 죽어도 산다 : 99만
7. 슈렉3 : 94만
8. 본 얼티메이텀 : 76만
9. 오션스 13 : 58만
10. 박물관이 살아있다! : 55만 (누적 122만)


* 간단총평
1. 한국 : 디워 & 화려한 휴가. 미녀는 괴로워의 의외 흥행.
2. 외국 : 외국이라고 하지만 모두 미국영화. 시리즈물의 초강세.



2. 2007 개봉 영화 (개봉영화라고 하지만, 실은 '개봉작'이 아니라 '상영작'을 기준)


한국 (- 표시는 내가 본 영화)

more..




외국 (-표시는 내가 본 영화)

more..




3. 나 만의 top 5 리스트

전체
1. 폭력의 역사 : 크로넨버그의 새로운 비전
2. 록키 발보아 : 스탤론, 드디어 '어른'이 되다.
3. 올 더 킹즈 맨 : 숀 펜의 압도적인 카리스마.
4. 기담 (정가형제) : 감미로운 공포.
5. 우아한 세계 (+ 밀양)


한국
1. 기담 : 2007년의 발견.
2. 우아한 세계 : 대중성과 영화적 비전의 조화.
3. 밀양 : 언제나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창동
4. 극락도 살인사건 : 적절한 메시지를 담은 웰메이드 상업영화.
5. 싸이버그지만 괜찮아 : 그래도 박찬욱이라서.. ㅡㅡ;

* '스카우트' 는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ㅡㅡ;


외국
1. 폭력의 역사
2. 록키 발보아
3. 올 더 킹즈 맨
4. 엘 토포 : 알레한드로가 창조한 컬트의 전설.
5. 리틀 미스 선샤인 : 그야말로 훈훈한 가족영화. 그렇다고 뻔하진 않은.

* '색/계'는 정말 정말 보고 싶었는데 못봤다. 봤다면 (아마도) 리스트에 있었을 것 같다.


4. 기타 내가 재밌게 본 작품들

디워 : 액션의 쾌감. 물론 트랜스포머의 세련미는 없지만.
조폭마누라3 : 쓰레기영화라고 욕하시는 분 많은데, 시리즈 중에선 그래도 3편이 가장 흥미롭더라.

조디악 : 지루하게 빨려들다.
한니발 라이징 : 한니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
넘버23 : 영화와 소설의 관계.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책을 읽지 않아서 더 재밌게 본 것 같다.
스파이더맨 3 : 일단 재밌다.
트랜스포머 : 액션의 쾌감
다이 하드 4 : 죽어도 산다 : 기본은 한다.
라따뚜이 : 따뜻하고, 상큼한 애니메이션
에반 올마이티 : 단순함의 미덕.

본 얼티메이텀 : 굉장히 좋아하는 시리즈.
인베이젼 : 각 리메이크의 시대상황(정신)과 비교해서 보면 더 재밌을 듯.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 신나는 액션.
브레이브 원 : 닐 조단은 죽지 않았다.
블랙 달리아 : 재밌긴 한데...
일루셔니스트 : 웰메이드 킬링타임.



p.s.
리스트가 뭐, 좀 뻔하다.
그리고 중요한(할 가능성 높은) 영화들을 많이 놓쳤다.
앞으로는 좋은 영화 좀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특히 한국영화 좀 찾아봐야지... ㅡㅡ;



* 관련 팟캐스트

무비토크 11회


Trackback 1 And Comment 6
1. 역사의식이 중요한 건 반복될 수 있는 인간의 과오, 그것이 초래할 공포와 야만을 피할 수 있는 관점과 철학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2. (예전 정은임이 'FM 영화음악' 진행하던 시절, 정성일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의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나치의 유태인 집단학살, 즉 '홀로코스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증명하기가 힘드니까.

그래서 영화 하나가 만들어졌다.
끌로드 란쯔만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쇼아](shoah. 히브리어로 '멸절'을 의미)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끊임없이 진술한다.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고, 구호로 선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우슈비츠의 한 복판에 있었던 노인들이 자신이 겪은 그 야만들을 진술할 뿐이다.
그저 이야기하는 노인들의 떨리는 눈동자와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그게 아우슈비츠는 사실이었고, 저 노인들의 말이 진실이란 걸.


3. 님 블로그에 들렸다가 안병직과 이영훈이라는 문제 많은 역사학자들(경제사학)의 대담집에 대한 서평을 읽었다. 님께서 인용한 구절들을 보면, 소위 '뉴라이트'의 대표적인 학자라는 이들의 역사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님께서 인용한 구절들은 강제징용, 종군위안부에 대해 안씨와 이씨가 서로 지껄인(말 그대로 지.껄.인.) 내용이다. 발췌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근현대사는 제국주의와의 투쟁 과정뿐 아니라 그와 협력하면서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캐치업의 복합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과거사 청산이라는 해서 안 될, 해도 되지 않을 무리한 일을 시작했다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민심이 떠나는 것도 이 같은 잘못된 역사 인식에 기초한 과거사 청산에 큰 요인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안병직 : 모집과 관 알선에 의한 노동 이동을 (강제) 동원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처음 모집 단계에는 일본의 회사가 조선에 와서 직접 노동자를 채용했는데 지원자가 넘쳐났습니다. 강제로 갔다고 할 수 없지요.

이영훈 : (...중략...) 어쨌든 다소간의 강제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역사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강제동원설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국 연구자들이 강제연행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생존 위안부들의 증언입니다. (...중략...) 다른 한 가지는 여자들이 위안부로 해외로 나갈 때 필요한 여행증명서를 관에서 발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모두 정황론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중략...) 그렇지만 피해자들의 오래된 기억만으로는 관의 공식적 개입을 입증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60년도 더 된 과거사를 가지고, 또 싫든 좋든 1965년의 한일협정을 통해 청산된 양국의 과거사를 가지고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우방으로서 도리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정대협이 연로한 위안부들을 동원하여 매주 벌이고 있는 일본대사관 앞 시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쓰레기를 광고해주는 매체가 있다.
두 말하면 입아프다.
일등신문 조선일보다.
이러니까 도저히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안된다. (해당기사)
(링크는 걸지만, 굳이 읽을 걸 권하진 않는다)
(조선일보의역사의식의 단면이 궁금하다면 80년 5월의 조선일보를 참조).

"피해자들(위안부 할머니)의 오래된 기억만으로 관의 공식적 개입을 입증하기는 무리"라고?

우리에게도 이런 망언에 대답할 영화가 있다.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1~3)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일본 제국주의라는 비극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희극으로 재현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판 코미디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씁쓸하고, 너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참조할 만한 페이지
서울 인권영화제 - 쇼아 (인권운동 사랑방)
숨결 - 낮은 목소리 3 (박재환의 리뷰)
1993∼2000 <낮은 목소리>에서 <숨결>까지[제작일지]  (씨네21)
낮은 목소리 DVD 세트


* 민노씨.네 관련글
조선일보(1페이지 , 2페이지)
역사의식


* 발아점
만약 정말 남아도는 돈 1만3,000원이 있다면... ()



* 이 글은 여기에 동시 등록합니다.
물론 같은 메타사이트로는 중복 발행하지 않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2
0.
가장 신뢰하는 매체인 '프레시안'마저도 '미수다' 관련 기사를 연합뉴스에서 업어온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한국 최고의 칼럼니스트라고 생각하는 고종석씨도 예전에 매우 호의적으로 '미수다'에 대해 한 말씀 날렸다.

포털 하청업체인 연예 찌라시 업체들은 두 말하면 입아프고, 블로거들 역시 [미수다]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매우 높다. 현재 미수다의 핵심 키워드는 '자밀라'와 '윈터'인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미수다 사건' 한국인이 부끄럽다]는 글을 '다음 블로거뉴스'에서 전략적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현재 스코어 24만의 21만의 조회수를 기록중이다. : )
가볍게 첨언하자면 나는 이 글의 취지에 대체로 공감한다. 물론 '우리나라 네티즌 부끄럽다'류의 과장된 수사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자밀라와 윈터 사건(?), 그리고 이에 대한 도미니크의 발언으로 말이 많지만,
아무튼 '미수다' 전성시대라고 할만하다.


1.
'미수다'를 나는 꾸준히 시청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거의 시청하지 않는 편이고(-_-;), 그렇다고 '미수다'를 앞으로 시청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미수다'는 보기에 즐거운(이쁜 ㅡㅡ;) 외국 여성들 업어다가 꽃단장 시켜놓고, 이런 저런 농담 따먹기에 열중하는 오락 프로그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건 비난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까 '미수다'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주로 백인) 쭉빵녀에 대한 남성들의 이국취향과 관음증에 기반하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거 듭 말하지만 이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무슨 도덕적인 엄숙주의자라거나, 혹은 모든 TV 프로그램들이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 전혀 없다. 오히려 위장된 형태로 시청자들 훈계하는 유사 휴머니즘, 유사 도덕론의 가면을 쓴 막장 저질 프로그램(이를테면 TVN의 '독고영재의 스캔들'이랄까.. )을 저주하는 편이다.

그렇다.
나는 포르노 합법화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2.
고 종석의 솔직한 고백처럼 (다수의 남성 시청자들이) "이 프로를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은 새뜻한 외국 여성들을 한꺼번에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텔레비전의 이런저런 오락 프로그램에 비치는 한국인 여성들 역시 거의 다 미인"인 판국에 "출연자들이 죄다 미인이라는 것 역시 끄집어내 지적할 악덕이랄 순 없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미수다'는 매우 훌륭한 외모를 소유(!)한 이국처녀들이 "우리말로"(고종석은 특히 이걸 강조하더라) 한국 풍속, 그리고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이모저모수에 대해 수다 떠는 오락프로그램이다. 이것이 "한국인 시청자들이 전혀 몰랐던 걸 이 외국인 여성들이 가르쳐 주는 것 같진 않다. (...중략...) 대개는 한국인이 잘 알면서도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거나, 외국에 대해 올바르게 짐작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해 주는 정도다"(고종석). 공감한다.

"인형들의 전시장"(고종석)에 머물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고종석의 지적들은 직접 음미하기 바란다. 모두가 (개인적으론 너무 호의적이고, 온건해서 좀 그렇지만)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3.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미수다'에 대해 끄적거리는건가. ㅡㅡ;;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하다.

내 가 느끼는 '미수다' 현상의 흥미로운 지점은 미녀 외국인이 한국말로 떠드는 이야기들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성향 매우 강한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이걸 계량화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테면 위 이은호님께서 지적한 "부끄럽다"류의 반응은 '미수다'에서 이야기된 한국적인 어떤 문화, 제도적인 모순에 대한 지적에 대한 일반적인 시청자들의 반응과 큰 차이를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럽다는 거다.
쪽팔리다는 거.


4.
제목이 좀 거창한데, 오리엔탈리즘이란게 별게 아니고, 서양이 동양(오리엔탈)에 대해 덧 씌어놓은 일종의 위장된 체계, 서양의 정체성을 보전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동양을 절대적인 타자로 설정한 담론들의 체계라고 이해하면 쉽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서양이 표상하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가짜 진실을 공고하게 세우기 위해 동양은 주술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아리따운 외국미녀들이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들, 이런저런 못마땅한 풍속들을 이야기한다. 그건 이미 있어왔던 사회적 모순이고, 병폐들이다. 가령 윈터의 '성폭행' 이야기는 그 가장 상징적인 예시일테다. 이것이 고쳐질 필요 없다는 것이 전혀 아니라, 거기에 반응하는 태도가 무작정 "우리나라 부끄럽다"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더욱 우려하는 건 이런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들이 절대선인 것처럼 다른 고민들을 지워버린다는 거다. 가령 성범죄자의 인권문제는 논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강간대국'이라는 (그 출처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강화된다.

어떤 자극적인 이슈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들은 그 이슈가 제기하는 어떤 제도와 풍속의 모순과 비합리성에 대한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개선되고, 고쳐지는데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서 그냥 한번 뜨거워지다가 마는 수가 많다. 그리고 '성범죄 때려잡자'류의 선동은, 그 자체로 성범죄자의 인권에 대한 이성적인 고민, 국가공권력의 행사범위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논의를 묵사발내는 효과를 갖는다(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고 싶다... ).  

제도와 풍속의 어떤 지점이 정말 문제인지에 대해 좀더 이성적으로, 좀더 냉정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외국의 미녀들이 성폭행 당했다.
신고했는데 창녀라고 거절당했다.
우리나라 부끄럽다.

이런 선정적인 단편들을 엮어서 얻어질 수 있는 건 극단적인 감정적인 폭주와 민족주의적이며 감상적인 감정의 과잉(우리나라 부끄럽다 류의), 혹은 전도된 변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일 뿐이다.

어 떤 한 개의 사례가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고, 미수다 출연진의 한 명이 그 사건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외국인 전체에 대한 한국사회의 태도로 치환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나라만큼 '백인'(!)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인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딨나? 이와 함께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그 잔인한 시선과 태도들은 또 뭔가?

배타적인 민족주의도 문제지만, 서구 문화에 대한, 특히 백인에 대한 지나친 경도와 무비판적인 접근방식도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건 스스로 내면화시킨 오리엔탈리즘의 문화적인 발현이지 않나 싶다.


5.
'미수다'에 건의하고 싶은게 하나 있다.
쭉방 모델 자밀라로 장사하고 싶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외국 아가씨 말고도 정말 고생하는 동남아 외국인 아가씨들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런 아가씨들 중에서 쭉빵(ㅡㅡ;)한 아가씨들 고르면 되지 않나.
이런 한국에 거주하는 다수 외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평범한' 아가씨도 좀 섭외하길 바란다.
그 3D 업체에서 일하는 쭉빵 외국인 노동자 아가씨들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꾸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조.

1. 여기

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 12일 ‘주요 국가의 범죄발생추세 비교’라는 제목으로 연구 결과를 홈페이지(www.kic.re.kr)에 공개했다.

(... 중략 ...)

'서울과 부산 등 한국 주요도시의 외국인 상대 성폭행 범죄율이 아주 높은 수준;이라는 캐나다 외교부(www.voyage.gc.ca)와 미 국무부 웹사이트(www.state.gov)의 ‘경고’를 무색케 한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www.prkorea.com)는 “해당 웹사이트에 공식 항의했으나 조사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며 지난달 홈페이지에 올린 내용을 그대로 실어놓고 있다. ”고 밝혔다.
* OECD:성폭행사건(인구10만명당)[2003년]

1 오스트레일리아 81.4
2 캐나다 78.1
3 미국 32.1
4 아이슬랜드 26.0
5 뉴질랜드 22.5
6 벨기에 16.6
7 영국 16.2
8 스웨덴 14.7
9 프랑스 14.4
10 스페인 14.3
11 멕시코 13.3
12 한국 13.0
13 노르웨이 12.4
14 핀란드 11.2
15 네델란드 10.4

ㄱ. 성범죄률에 대해선 한 마디 하고 싶은게 있는데, 통계청을 가봐도, 형사정책연구원 사이트를 가봐도, 대검찰청 사이트를 가봐도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 신뢰도 높은 통계치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 다. 통계청을 뒤저보니 '성범죄 통계'를 알고 싶다고 문의했던 기록까지 있는데, 그 답변의 링크를 쫓아가봤지만, 뜬금없이 서비스 형식이 바뀌었다는 안내창이 뜬다. ㅡㅡ;; 이런 통계치에 대해 궁금한 국민들은 당연히 국가기관에서 이런 정보를 쉽게 입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국가가 '알 권리'의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해줘야 하는 당연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데... 좀 많이 짜증난다.

ㄴ. 우리나라의 성범죄률이 낮은 이유는 유교적인 문화권인지라 '성범죄'에 대한 신고률이 낮다는 지적이 있는데, 적절한 지적인 것 같다. 다만 그렇더라도 그런 정황만으로 우리나라의 성범죄률이 높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ㄷ. 오히려 성범죄 재발을 방지하는 형사정책적 방법론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논의를 좀더 생산적으로 이끌지 않을까 싶다. 성범죄자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성범죄자의 인권(프라이버시)보다는 정책적 목적(재범 방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일련의 움직임(전자팔찌 도입에 관한 움직임이랄지, 유아 성범죄에 대한 범죄자 정보의 확대 공표랄지.. )이 좀더 활발히 토론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2.
한국의 성범죄자에 대한 짧은 이야기 / 일지 2007/10/18 23:53
성범죄자의 인권에 대한 짧은 논평을 기록한 글.
http://zizec.tistory.com/trackback/1

3. 여기
경 찰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05년) 성범죄는 1만 3446건으로 2004년의 1만 4089건보다 줄었지만, 7~12세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2003년에 492건이던 것이 2005년 584건으로 증가하고 있고, 거기에는 남자아이의 성폭력도 늘고 있어 부모의 공백이 직간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4. 관음증적 '미녀들의수다'와 경박한 미디어 [뉴시스 2007.11.17 12:19:19]
그나마 추천할 만한 기사.



* 이 글은 예외적으로 제 메인블로그인 민노씨.네에 동시등록합니다.
물론 메타사이트에는 중복발행하지 않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2
0. 이 글은 '돌이킬 수 없는'에 주신 내내님(내가 내냐)의 논평에 대한 답글입니다.
제 볼 것 없는 글에 이토록 풍성한 논평을 주신 내내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하 내내님께서 주신 논평은 회색박스로 처리합니다.


1. 트윈픽스의 빨간 방.

특히 저 포스터는 즉각적으로 트윈 픽스 마지막장면의 빨간 방을 연상케 했어요.

[트윈픽스]의 '커튼으로 가려진 빨간 방'과 [돌이킬 수 없는]의 지하도 이미지는 내내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유사하네요. [트윈픽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데이빗 린치의 작품입니다. 물론 영화판이 아닌 TV판으로 말이죠.

다만 [돌이킬 수 없는]의 검붉은 핏빛으로 물든 지하도는 [트윈픽스]의 빨간 방보다는 좀더 날 것의 느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이미지 모두 몽환적이고, 욕망의 가려진 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돌이킬 수 없는]의 지하도가 좀더 현실에 가깝다면,  [트윈픽스]의 그것은 좀더 무의식, 몽환, 꿈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트윈픽스]에 등장하는 붉은 커튼으로 둘러싸인 방.
어떤 평론가는 백악관에 대한 메타포라고 해석하더라(정성일).



2. 내러티브의 시간 : 박하사탕, 메멘토와 비교

ㄱ. [메멘토] 경우

똑같이 과거를 거슬러가는 이야기구조이긴 하지만 메멘토는 그 과정에서 기억의 상실과 재구성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통한 진실의 왜곡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진실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규정해야하는가란 문제를 미스테리적 재미를 곁들여 제시하고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인 주인공 레너드의 기억의 재구성이 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같은 불확실한 것이기에 메멘토의 반전퍼레이드는 설득력의 획득을 넘어서서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는 메리트를 확보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억지와 과장을 느끼게 하긴 커녕 다음엔 어떤 반전이 펼쳐질지 기대마저 하게 만듭니다.)


ㄴ. [박하사탕] 경우

박하사탕은 김영호란 인물의 과거로의 회귀과정을 따르면서도 한국사회가 현대화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는 동안 김영호개인(그는 시대의 발전이란 미명하에 희생된 그 시대 사람들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가지지요.) 이 현재로 이동하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그려내며 마지막 장면과 첫 장면의 공간과 무대가 일치할 수 밖에 없는, 바꿔 말하자면 김영호의 한국현대사 참여의 시작과 마지막의 공간이 동일하다는 불가항력에 관한 수미쌍관법을 소설적으로 완벽히 선보였다면


ㄷ. [돌이킬 수 없는] 경우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역순으로 배열했을 뿐인 [돌이킬 수 없는]을 보고 느낀 뒷담은 우습게도 "말이 씨가 되니 말조심을 해야되는구나..." 정도밖에는 없었습니다. (모니카 벨루치가 지하도에서 뒹군다는 꿈과 벵상 카엘의 애널섹스욕구가 현실화되잖아요?)

굳이 찾자면 모니카 강간범이 아닌 엉뚱한 남자에게 복수를 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그건 그 뒤로 전개되는 플롯과 아무 관련이 없는 단순한 오해일 뿐이지요. 거기다 화면전환시 반복되는 카메라 빙빙돌리기는 짜증만 났구 결정적으로 모니카 벨루치의 외모와 명성에 비하면 너무 눈요기용으로 전락시킨 느낌이 들어서요. 이건 돌이킬 수 없는 뿐만 아니라 그녀가 출연한 모든 영화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메멘토]와 [박하사탕]에 대해 주신 말씀은 저 역시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돌이킬 수 없는]에 대해 실망감을 피력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달리 판단하는데요. 제 관점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에서의 시간의 역순 구조는, 그런 내러티브 구조는 이 영화의 비전과 정확히 부합하는 '방법론'이었다고 판단하고, 또 충분히 영화적으로 설득력있게 형상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본문에서도 말씀 드렸듯, 욕망이 원형적으로 순환하고, 회귀하며 또 그렇게 '모순'에 찬 상태로, 스스로가 죄를 만드는 형식으로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묵시록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것이 정말 과감한 이미지들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고 판단해요.

그리고 '대상의 착오' 부분은, 매우 의미심장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복수가 실현되었을 때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는 정의의 성취,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관습적이고, 평면적인 '감상'을 전복시키는 시도라고 평가합니다. 이것이 내러티브의 균열로 느껴지신다는 내내님의 말씀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만, 이와 함께 영화 전체가 갖는 묵시록적인 비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의미있는 에피소드이자 '사건'이라고 평가될 만한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복수, 인간의 정의가 갖는 한계랄까, 그 부질없음이랄까, 좀더 나아가면 '우연'을 통해 실현되지 못하는 복수, 혹은 정의가 실은 좀더 커다란 지배적인 구조, 숙명적인 조건에 대한 조소 혹은 유머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데리다가 시도했던 '전체''의미'의 이성적인 구조에 대한 해체랄까, 전복적인 시도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어요.


3. 라스트

그러나 자칫 3류외설물로 전락할지도 모르던 영화가 간신히 바닥치기를 모면한 것은 마지막 장면덕이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이 흐르면서 보여지는 모니카의 행복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구사되는 "행복하게 시작했지만 결말은 비극적이다." 내지는 그 반대구조의 일반적 내러티브형식이 아니라 처참한 비극으로 결말지어지는 시작을 먼저 제시한뒤 과거로의 복기장면나열을 통해 마지막에 보여지는 이야기의 첫머리는 결론의 암시나 상징이 아니라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닌)스타트`였다. 라는, (써놓고보니 웃기는 단어군요.) 어찌보면 간단한 뒤집기이지만 기발한 착상의 영화문법의 하나였습니다.

박하사탕의 경우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김영호의 아픈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 들어가있는 반면 돌이킬 수 없는 의 마지막은 완벽한 해피스타트이죠. (배경에 깔리는 비장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유심히 들으면 완벽한 해피라고하기엔 좀 무리가 있기도 합니다.) 이 형식적 일탈행위의 시도로 인해 얻어진 효과는 아니러니하게 영화를 다 본후 행복하게 끝난 기분좋은 영화 한 편을 보는 착각까지 느꼈다는 겁니다. 그 주역이 모니카 벨루치라는 극강의 미모의 소유자였기에 착각의 농도가 더욱 더 짙어질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이런 미인이 상상조차 못할 극한의 상황에 내팽겨치는 것에 절대 익숙하지 않거든요. 거기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태아포스터를 깔아놓은 의도는 충분히 짐작하지만 이런 유형의 영화엔 전혀 어울리지 않더군요.

저로선 그 마지막 장면에 대한 감상은 오히려 공포, 소외, 부질없음, 고립감, 이런 영원한 고통과 모순들의 영겁회귀... 이런 이미지들을 극적으로 증폭시키더군요. 그래서 그 끔찍함, 그 허망함이 아주 극명하게 고조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졌구요. 그 '역설적인' 해피엔딩의 방식이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블랙 유머'로 처리되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에서는 좀더 노골적인 대조를 통해서 형상화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제 감상과 판단이 정확히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일단 이것으로 제 대답을 갈음할까 싶습니다.
다시금 풍성하고, 깊이있는 논평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아시스]에 주신 논평에 대해서도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