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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화해 - [하얀거탑] 최종회 단상

2007. 3. 12. 00:42  |   리뷰  |   키노씨



0. 장준혁이 죽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성취와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권력의 역학들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났다. 그걸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용서받긴 했지만...


1. 미워할 수 없는 인간, 장준혁

장준혁은 선을 상징하지도, 그렇다고 악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그는 매우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왔으며, 오히려 그가 '전형적인 악'을 행할 때에도 그 행위의 동기들은 현실적인 지지, 혹은 이해를 받곤 했다.

(개인적으로 친교하는, 영상콘텐츠에 대한 리뷰를 주로 쓰는 블로거) 박형준은 이런 일반의 지지, 혹은 심정적 동조를 장준혁의 태생적 조건과 장준혁의 짝패로 등장한 '소위' 양심적인 사람들의 '무능'과 '무기력'에서 찾기도 한다. 나는 이런 박형준의 해석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내심 그 해석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이 지점은 이 드라마를 정치 드라마로 해석할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그 해석의 귀결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며, 장준혁에 투사되는 인물이 반드시 이**은 아닐 수도 있다). 


2. 거듭 강조하지만 '거탑'은 메디컬 드라마라기 보다는 정치 드라마다.

그 정치드라마로서는 정말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남겼다. 그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갖는 상징성은 쉽게 우리나라 현실 정치 지형에 '그대로 대입' 가능할 정도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소위 따분한 '진보논쟁'보다는 '거탑'을 보고 나서 그 '거탑'의 인물들에 대해 자신의 철학과 정서를 투사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정치적 '대화'가 될 수 있을테다.

정치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드라마가 갖는 영향력은 심각하게 고민될 만한다. 그건 그 드라마라는 '상품'이 갖는 대중성과 파괴력 때문에 그렇다. 어떤 드라마 한편을 통해 우리는 그 드라마가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추론'하고 '해석'할 수도 있는 거다.

즉, 모든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를 해석한다. 그리고 그 당대의 공기를 흡수하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레이건 시대의 아이콘이 람보(정확히는 람보 2)인 것처럼 '거탑'은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와 시대정신, 사람들의 욕망과 도덕을 해석하고, 반영하고, 또 전망하면서, 그 자체로 '거탑'의 시청자들에게 도전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질문은 때로는 진부한 드라마의 관습에 갇히고, 때론 너무도 선명한 대립선들로 인해 그 질문의 두께가 현실적 잠재력을 잃기도 한다.

이제 그 아쉬움에 대해 좀더 적어야겠다.


3. 가짜 화해

최종회는 공중파 드라마라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그 최종회를 '가짜 화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물론 이 드라마의 미덕들을 모두 인정하는 전제로, 그리고 연출진과 스텝, 그리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말이다.

'거탑' 최종회는 감상적인 화해, 휴머니티로의 회귀라는 모호한 노선을 취함으로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의 수위를 스스로 낮춰버리고 말았다. 이제 모든 것이 한 인간의 죽음으로 화해를 이루는 것 처럼 보인다. 그 죽음은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마술'을 부린다. 하지만 그 죽음 이후에도 권력은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작동할 것이며, 그 권력을 쫓기 위한 인간의 욕망도 정지하지 않을 것이다.

장준혁은 죽음으로써 너무 쉽게 용서받았고, 그 용서는 매우 감동적이고, 또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준혁의 죽음을 슬퍼하며, 또 거기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에게, 아직도 현실은 무섭도록 냉정한 곳이며, 그 감상적인 눈물이 우리를 그 냉정한 현실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것이 과도한 수사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장준혁은 용서받음으로써, 구원받지는 못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건 정말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나는 상투적인 권선징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최도영이 승리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드라마가 악의적인 의식적 지향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탑'은 좀더 더 밀고 나아갈 수 있었지만, 스스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건 정말 깊은 아쉬움이다.


p.s.
그렇더라도, 이런 정도의 수준 높은 정치 드라마를 만들어준 제작진 이하 스텝, 그리고 정말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김명민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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