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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와 페미니즘 [PP 연재 4]

2007.03.19 17:17  |   포르노프로젝트  |   키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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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li-Bobbitt, by Mary Beth Edelson


 


포르노페미니즘
- 유사 페미니즘포르노 증오의 문제




Ⅰ.
나는 페미니스트다.
포르노 쓰는 놈이 무슨 페미니스트?
그럼 나는 마초다.

그런데 실은 난 마초도,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냥 모순에 가득 찬 인간이고, 아무것도 '확정적'으로 진술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본주의의 포로이며, 그 한 가운데서 어떤 막연한 환상과 억압과 불만을 느끼는 불안한 영혼일 뿐이다.

이분법은 때론 명쾌하다.
하지만 흔히 아무런 생산적인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거기엔 서로의 살을 부빌수 없는 깊은 간극과 심연만이 존재한다.

당신의 확신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당신이 진술하는 확정적인 언술들은 나를 묶고, 나를 미치게 한다.
나는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최소한 당신이 증오하는 포르노만큼 나쁘다.

Ⅱ.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에 대해 상식적인 이해를 가진 독자들은 생략하셔도 무방합니다).  

'정의' '의의'는 실은 기본이 아니라, 처음이자 마지막에 가깝다. 그건 가장 어려운 건데, 그게 가장 '쉽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은 제발 백과사전이라도 찾아보자. 당신의 막연하고, 추상적인 상식보다는 좀더 풍성할 확률 높다.

- 참조 : 이 단락은 키워드로도 입력합니다. 해당글 클릭하시면 됩니다. 본문에서는 요약글로 담습니다.

<a class="key1" onclick="openKeyword('/keylog/%ED%8E%98%EB%AF%B8%EB%8B%88%EC%A6%98')">페미니즘</a> 개요 ^ ^


 

Ⅲ. 페미니즘의 다양한 분파들, 그리고 이론을 위한 이론들.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페미니즘은 '공식적인' 페미니즘 흐름일 뿐이다. 혹 다수설로서 많은 학자들에게 공인된 페미니즘 '개요'일 뿐이다. '여기'의 페미니즘이 '저기'의 페미니즘은 아니고, '어제'의 페미니즘이 '오늘'의 페미니즘은 아니다. 그리고 위 각 시대를 지배하는 주된 뿌리로서의 페미니즘의 흐름들, 그 뿌리와 가지에서 파생한 수많은 분파들은 서로 대결하고, 서로 투쟁하고, 극단적으로 서로를 배격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의 다양한 분파들 중에서 그 소수는 포르노가 지니는 '권위적 질서'에 대한 저항적 에너지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니 항상 페미니즘 진영에서 '무조건'에 가깝게 포르노를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일종의 착각이다.

현대 페미니즘의 다양한 분파 즉, 급진적 페미니즘,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맑스적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조한혜정처럼)이 여러가지 경우의 수로 여기에 '교배'하고 있다.

그래서 문제는 좀더 복잡해지고, '따분해진다'.
따분해진다, 이게 문제다.

따분해지는 순간을 좀더 상술하면 이렇다.
페미니즘은 이론을 위한 이론, 지적인 '과시' 혹은 학자들과 그들의 몇몇 '제자'들을 위한 '지적유희' 수준으로 전락한다(조혜정이 '탈식민지 지식인의 책읽기'에 담은 문제의식은 여전히 의미있다). 페미니즘은 강단에서 멈춘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박사 되기 위한, 혹은 여성단체 연구원 되기 위한, 것도 아니면 그래도 폼잡기 위한 -_-; 수단으로 추락한다. 난 정말 그렇게, 아주 거칠게, 추론하고, 또 흔히 감촉한다.

페미니즘의 '실천적' 액션들을 '목격'한 독자들이 있다면, 그 목격담을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난 정말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그게 지적인 과시가 아니라, 삶에 스며들고, 일상을 파고들어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경우를 목격하거나, 혹은 스스로 그런 '이론과 실제의 완전한 만남'을 체현하고 있는 독자들의 '일기'를 나는 듣고 싶다. 제발 나의 '무식'과 감상적 재단을, 그 성급한 마초적 감수성을 야단쳐주기를 바란다.


Ⅳ. 유사 페미니즘 ; 혹은 장식적, 과시적 페미니즘, 또는 악세사리 페미니즘.  

시각, 2006년 9월 8일 오후 6시 21분.
장소, 대한민국 서울의 어떤 옥탑방 책상 위 창백한 모니터 속.

현재 스코어를 나는 거칠게 '상상적으로'('상식적' 아님) 추론한다.
페미니즘은 흔히 '과시적'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천박한 비교 감정과 과시욕을 '실천적으로' 학습 시키는 '싸이월드'류의 문화에 포위되어 있다. 페미니즘이 삶에 있어서 뚜렷한 동기와 실천적인 에너지를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막연한 뿌듯함을, 과시적 감수성으로의 만족감을 우리에게 줄 뿐이다.

페미니즘은 자신의 감정적인 공격 성향을 '교양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기술'로 흔히 활용
된다. 즉, 내 추론에 의하면, 과시적으로 '여성'이라는 '상품'을 근사하게 포장한 '유사' 페미니스트들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페미니즘 그 자체가 이제 상품으로서의 여성을 치장하는 화장술이 되는 경우 그건 '유사 페미니즘'이다. 이 놀라운 시대에 그 유사 페미니스트들은 자기 욕망이 어떻게 조직되고, 유통되는지를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자부심 만빵 충천하고 나서 포르노를 비난한다.

나는 현재의 성문화, 성의식은 이율배반의 극단적인 구조화
라고 생각한다. 이론 따로, 실천 따로다('포르노가 이론이라면, 강간은 실천이다'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그 '주장'과 '가설'이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부터 살펴야할 것이다. 이 문제는 후술). 남/녀 대결적 구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골적인 상업적 이슈 '된장녀'논란이 난 정말 짜증난다. 그 한가운데 '유사 페미니즘'의 감정적인 뽀얀 갑옷 입은 무사들이 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자본주의의 포로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방신기'에 열광하는 소녀들처럼, '페미니즘'에 열광한다. 그리고 '섹스&시티'의 풍경을 그리거나, '무슨 무슨 학술잡지'를 인용하는 거다.

그런데 난 정말 그들을 모르겠다. 그들의 교양미 철철 넘치는 '남 나라 이야기'들을 나는 모르겠다. 그들이 즐겨 가는 무슨 무슨 세미나에서 나오는 그 머리 아픈 이야기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없는 유사 페미니즘의 과시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태들 언술들. 그것들 모두 이 아비규환에 가까운 모순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락녀들이 짭새보다 더 질색하는게 여성단체 사람이라는 걸 들은 바 있"
다고, "본질적으로 그 자칭 페미들은 남성우월주의자들이랑 별다른게 없다"고 누군가(박형준군)가 나에게 진술한다.

겉멋든 유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페미니즘의 그 종이 몇장 지식이 마치 스타벅스 커피로 상징되는 동경으로서의 라이프 스타일 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상품성을 치장하거나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위로해주는 일종의 자위용 도구.

그렇다면 페미니즘포르노와 쌤쌤이다.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남 이야기들의 조합으로 말하는, 어떤 유사 페미니스트들을 나는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는 자기 욕망을 '타인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건 욕망을 흉내내는 방식이지, 자기 욕망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은 아니다. 거기에는 선택이 없고, 그저 수동적인 학습만 있다.

문화적 차이로서의 남/녀의 구별
은 난 의미있고, 재미있고, 그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측면도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획일적인 강요가 되고, 거절할 수 없는 도그마가 되면, 그건 억압이다.

페미니즘이 흔히 말하는 대로,  포르노가 여성의 신체를 '억압'한다면, 유사 페미니즘여성의 '정신'을 억압한다.


구체적으로, 자기가 담겨 있는 세상 속에서, 자기의 목소리로, 자기를 이야기하자.
쉽게 말해서.. -_-;;
잘난 척 좀 그만하자.


Ⅴ. 페미니즘의 '포르노 비판' 검토 ;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1. 일단 간단한 흐름

* 다수의 페미니즘포르노를 반대한다.
* 소수의 페미니즘(분파들)은 포르노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을 비판한다(그러니 포르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그것은 '검열'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니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시스템의 도구이자, 하수인으로서의 '위선적인 도덕'이 '선택' 자체를 박탈하는 '검열'이라는 국가권력의 오만에 저항하는 거지 뭐.

2. 어떤 페미니스트의 '포르노 탐험기'
 
이채, 이채 포르노를 말하다 2 ; 나는 왜 포르노를 말하나?
원문 - 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456&ct1=4

대체로 있을 수 있는 주장이고, 또 상식적인 서술이라고 느낀다.
다만 다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글 가운데 모순들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_-;;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포르노는 강간을 비롯한 수많은 폭력을 이상적 성행위나 남자다운 행동으로 그려낸다(강간과 폭력, 섹스는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포르노가 그들을 혼동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포르노의 가장 큰 죄악은 이 대목이다. 그 결과 천편일률적으로 폭력적인, 그래서 지루한 포르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적으로(그들은 포르노나 성에 적극적이거나 해박하지 못하면 '찌질이' 취급을 받는다) 포르노를 통해 성 지식을 습득하는 남성들은 이러한 편견과 오해들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의 지식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 이 되어버리는 셈이다"(이채). 

 - http://www.ichae1982.com/tts/index.php?pl=456&ct1=4 중에서

위 이채의 주관적인 진술들, 가설들을 지지하는 근거로서 채택된 '객관성'은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레이건 정부 시절의 '포르노 그라피특별위원회'의 결론이다. 그런데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결론'은 다음과 구체적인 맥락 하에서 존재하는 또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가설은 '강한' 가설이 아니라, 근거 희박한 '약한' 가설이다.

이를 간결하게 지적하고 있는 글을 만나서, 그 글을 일단 인용하도록 한다.

남로당, 보수주의와 페미니즘의 동거에 반대한다 - 포르노를 허하라! 
원문 -  http://namrodang.egloos.com/1586581

이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두 가지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 법무장관 산하의 "포르노그라피 특별위원회"의 조사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포르노는 여성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포르노는 주로 성인 남자들과 소년들의 흥분을 목적으로, 그들의 색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다. 증거는 아직 불명확하지만 본 위원장의 의견에 따르면 포르노를 보고 소수의 위험한 사람들은 주변의 여자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한다. 포르노는 이론이며 강간은 그 실천이다.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 과정을 보면, 사회개혁운동인 페미니즘과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기묘한 연대관계를 볼 수 있다.

반(反) 포르노 여성운동가인 안드레아 드워킨은 위원회의 청문회 증언에서 요런 방법을 썼다.

1. 우선 아시아계 여자 모델이 나체로 나무에 몸이 묶여 있는 펜트하우스 사진을 보여준다.
2. 이어서 8살짜리 중국인 여아가 강간 살해당한 후 나무에 묶여 있는 뉴욕타임즈 기사의 사진을 보여준다.
3. 다시 펜트하우스 사진을 보여주면 이제 그 사진은 야한 사진이 아니라 엽기적 살인을 교사한 끔찍한 사진이 되어 버린다.
 
"포르노가 성폭력을 조장한다"는 결론이지만, 물론 둘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 http://namrodang.egloos.com/1586581 중에서


어떤 '위원회'가 '조사'하고, '보고서'로 작성했다고 해서, 그리고 그게 미국 행정부 산하의 기구라고 해서 '객관성' 확보되는 건 절대 아니다. 위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보고서'가 이미 있었다.  

1960년대에는, 포르노그래피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하므로 유해하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였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19명의 권위자, 20명의 스태프‘외설과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위원회’를 조직, 1968년부터 2년간 실증적 연구를 하였다. (그런데)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성에 대한 흥미는 극히 당연한 것으로 건강에도 이롭다. 그리고 포르노 문제 대부분은 사람들이 성에 대하여 보다 솔직하고 대범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고 기술하고, 성인에 대한 포르노 판매 ·진열 ·배부 금지에 관한 법률을 모두 폐기할 것을 건의하였다(이상 n백과에서 발췌).   

냉전시대의 권위적 정부였던 80년대 레이건 시대와 혁명의 시대였던 68년(파리학생코뮨을 떠올려봐라)에(2년 동안) 쓰여진 그 두 개의 보고서가 갖는 차이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공기'와 일치하고 있다. 권력의 색깔은 어떻게 과학적인 듯이 포장되는 '사회과학적 학술조사'에 작용하는가? 이 두 보고서의 흥미로운 '차이'는 이에 대한 간접적인 증언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그러니 미국 행정부 산하의 위원회가 각각 상이한 그 시대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이지 않은 '작용'은 없다는 것을 강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위 이채 글은

"포르노를 두고 찬반을 가르는 이분법적 도식은 이 많은 문제들을 은폐시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으며, 반 포르노 페미니즘 진영을 고루한 보수주의자들 편에 밀어 넣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르노를 반대하거나 금지할 것이 아니라 포르노를 들여다보고 알고 이해하고 분석하여 개입하고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전략(이나영, [포르노 섹슈얼리티 그리고 페미니즘], 1999, 서원)을 취해야 한다. 여자들이 포르노를 사이에 두고 까뒤집고 볶고 찔러대는 푸닥거리를 한바탕 해야 한다. [전복의 정치학은 그제서야 가능해질 것이다]"

라고 조언하고 있지만, 그 조언은 스스로에게 돌아가야 할 조언이다.

이채의 위 글은 "한마디로 포르노는,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그 주장의 근거들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상투적이다(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 주장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증명할 수 없는' 레이건 시대의 위선적인 '가설'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이채의 글을 채우고 있는 건 '타인의 목소리'들이다. 그 목소리들은 서로에게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는 '지금/여기'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실존이 없다.

Ⅵ. 결어 ; '지금/여기'에서 '자기 목소리'로 포르노 고민하기.
 

##님이 다음과 같이 방명록에 비밀글을 남겼다.

"포르노는 아무래도 옹호하는 마음은 안생기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은 그야말로 둘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래야 그만큼 가치를 갖는걸로 생각하는 구식 사람이라서. 그 f어쩌고 하는 사이트 기사 나온고 보고 내가 젤 먼저 뱉은 말은 욕이었음. 나는 아직도 '내 여자니까, 너를 지켜준다..'라는 말에 감동받는 사람임.ㅎㅎ. 쓸데 없이." 

나는 포르노 그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포르노를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타인의 취향'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거의 항상 위선적이고, 자신의 욕망에는 너무도 충실한 권력과 권위는 쉽게도 '아랫 것들'의 욕망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가짜 권위 가짜 도덕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취향을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다면..
다른 취향 역시 인정하는 거.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명백한 범죄'(거듭 반복해서 확인하지만, 난 범죄임에 분명한, 그런데 포르노로 둔갑한 악질적인 상업주의에는 단연코 반대한다)가 아닌 한, 포르노에 가해지는 폭력들은, 그 포르노가 가한다고 주장되는 '폭력'만큼이나 야만적이라고 느낀다. 이 글은 그러니 포르노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포르노를 대하는 이율배반적인 의식의 집단적인 '폭력'에 대한 '방어'의 성격이 강하다.

포르노를 비난하는 그 대개의 논리들은 '그 비난'을 위해 '조직되고' '추상화되고' '정형화된' 상투형들을 갖는다. 그 근거들은 때론 서로 대립적인 논리적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그 흔한 오류들은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충실하지 않고, 그 자본주의라는 현실, 남한이라는 공간의 공기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책 속에서, 막연하게 '타인의 목소리'를 빌여오기 때문에 흔히 생기는 오류라고 생각한다(물론 책은 많은 지식과 참고를 주지만서도).

타인의 목소리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유사 페미니즘'이 진정으로 '자기 목소리'를 갖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되기 위해서라도, 포르노에 대한 '학대'를 멈추고, 진지하게 다시금 '지금/여기'의 '권력과 성, 그리고 포르노'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검열'제도가 위헌판결을 받아도, 아직 우리에게 가해지는 권력작용, 그리고 그 권력작용의 배후에 존재하는, 때론 기생하는 '자본권력'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 너무도 폭력적이다. 그건 포르노(를 빙자한 상업자본)의 폭력적 작용과 연동하면서, 또 그것을 확대재생산한다.

포르노에 대한 추상적인 비난이 멈춰지고, '범죄 / (비범죄화해도 좋을) 포르노' 에 대한 구별이 서로를 존중하는, 다양성을 긍정하는 '관용의 대화'를 통해 좀더 명확해지길 바란다.



이상이다.


: )






p.s.
이 글은 본문에도 있는 것처럼 '2006년 9월 8일'에 쓰여진 글입니다.
이 글은 '여기 ( http://wnetwork.hani.co.kr/skymap21/3606 )에 한동안 보관했었습니다.
다만 '위 여기'의 운영정책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옮깁니다.
몇몇 부분은 추고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