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21

영화 TV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

내 영화의 사춘기, [열혈남아](1987)

2007. 10. 22. 00:01  |   영화/드라마 단상  |   키노씨
#.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그냥 단상입니다. 이 글은 아주 예전에 썼던 글을 추고한 글입니다.


1. 영화에 대한 사랑을 정신적인 성숙의 단계에 비유한다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짝사랑처럼 그렇게 온통 마음이 빼앗기는 순간들을 만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 시절의 영화는 [열혈남아]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춘기의 짝사랑이다. 불가피한 사랑의 이미지들, 감정이 흘러가는 속도와 그 시간들, 그리고 엇갈림의 풍경들이 [열혈남아]에 있다. 그리고 가슴 저미게 슬픈 왕걸의 노래가 흐른다. 그러면 나는 정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왕가위의 영화들, 특히 [열혈남아]을 본다는 것은 한없이 떨리는 사춘기의 소녀로 돌아가 지나가 버린 시간들, 내가 담겨져 흘러왔던 그 그립고 슬픈, 따스하고 시린 시간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이다. 그것은 내 가느다란 감수성의 실에 매달린 까마득한 하늘 위를 날고 있는 하나의 연처럼 이리 저리 흔들린다. 그리고 이미지가 감정의 속도를 재현하는 그 스크린 속으로 나는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황홀한 이미지들의 폭포들에 휩쓸리며, 한없이 안타까워하고, 한없이 눈물 흘린다.

2. [열혈남아]가 갖는 특별함은 시간과 이미지의 일치와 엇갈림에 있다. 그 이미지의 흐름과 단절의 속도가 인물들의 정서들 통해 조율되고, 그 조율을 통해 구성되는 정서적인 풍경들은 놀랄 만큼 신비로운 매력으로 우리 안에 스며든다.

[열혈남아]는 인물들이 영화 속의 세계에서 갖는 정서의 움직임이 어떻게 흐르며, 어떻게 정지하며, 어떻게 다시 움직이는가에 대한 심리적인 그래프처럼 보인다. 마치 정확한 반응수치를 기록하기 위해 알 수 없는 센서들이 인물들의 심장에 부착된 것처럼, 그렇게 화면은 그들의 심장박동을 따라 멈추고, 흐르고, 질주한다. 그런데 그것은 도식적인 수치들의 조합이 아니라, 이야기이며, 열정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감정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만옥의 눈물과 유덕화의 분노에 찬 눈동자들 속으로 우리들의 진심으로 보내며, 그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담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패한 사람들이지만, 희망을 갖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한없이 꿈꾸는 우리들의 모습 그 자체이니까.


3. 홍콩반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직면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홍콩영화의 영화사적 특수함의 자장권에서 [열혈남아]도 어느 정도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혈남아]가 보여주는 특별함은 그 역사적 함의로만 영화의 의미를 환원할 수 없는 어떤 보편적인 감수성의 한 풍경을 재현하고, 그것이 우리들의 정서로 스며들어,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다시금 되돌려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얻는 결론은 어떤 순간들, 어떤 과정들, 어떤 열정의 떨리는 풍경들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과 그것은 우리의 심장이 뛰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열혈남아]는 그 외피의 내러티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절망이며, 좌절이며, 슬픔이지만, 그 속살의 이미지들은 희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따스한 동감과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혈남아 (熱血男兒, 旺角下問: As Tears Go By, 왕가위, 1987)      
홍콩 /  드라마, 범죄  / 90 분  / 개봉 1989.10.04

류더화     :  소화 역
장만옥     :  아화 역
장학우     :  창파 역
만자량     :  토니 역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비전 : ★★★★★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 연기 : ★★★★★
* 음악 : ★★★★★
* 효과 : ★★★★★
* 장면 : 모든 장면들.

* 사운드트랙
忘了汝忘了我 (망료여망료아) : 당신을 잊고 나를 잊고 - 왕걸
是我胸口永遠的痛 (니시아흉구영원적통) : (당신은) 내 가슴 영원한 고통 - 왕걸 & 엽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