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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수용소에서 푸는 홀로코스트 퍼즐 - 인사이드 맨 (2006)

2007. 11. 3. 08:45  |   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에 대한 고려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다만 관극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정도의 스포일러는 없(는 것 같)습니다.


0. 역사 - 홀로코스트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비유적으로 묘사된다.
어떤 사실에 대한 흔적으로서, 그 내면화된 관성으로, 어떤 풍경처럼 그렇게, 인물들을 그 기억 안으로 가둔다.
'Inside Man' 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중층적이다.

911의 흔적으로 이 영화를 분석하는 시도들은, 911 이후 미국의 분열적인 모습을 표현하거나, 혹은 아(안)/적(밖)의 교란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이것이 911이후의 미국사회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고 보기엔 좀 무리인 것 같다는 거다. 물론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그 해석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해석은 자유니까. 다만 그 해석이 그저 외적인 유사 이미지에 의한 것이라면 어쩌면 [인사이드 맨]의 진정한 전언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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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강도, 혹은 진실의 사자들

인사이드 맨 (Inside Man, 스파이크 리. 2006)     
미국 / 추리극. 역사극 / 128 분 / 개봉 2006.04.21

덴젤 워싱톤 Denzel Washington    :  키스 프레지어 역
조디 포스터 Jodie Foster    :  마들린 화이트 역
클라이브 오웬 Clive Owen    :  댈튼 러셀 역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  아서 케이스 역
윌렘 데포 Willem Dafoe    :  존 다리어스 역

외피의 내러티브는 은행강도 이야기다.
것도 굉장히 기상천외한 은행강도 이야기.
그 은행강도가 빈라덴이나 알 자르카위나 잠재적인 적인 아랍인에 대한 대유일까?
이건 전혀 아닌 것 같다.

영화는 의외의 풍경들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1. 퍼즐 -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그리고 [쇼아]

미국의 실증주의적인 역사학자들은 홀로코스트가 유태인들의 공포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더라(정성일한테 들은 얘기다). 그래서 만들어진 영화가 그 유명한 다큐멘터리 [쇼아. Shoah(멸절)](1985. 끌로드 란쯔만)다. 화면 가득 '살아남은' 유태인들이 끊임없이 진술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그 살아남은 자들의 얼굴, 그 눈빛의 떨림, 그 흐느끼는 목소리만으로 그 야만의 '진실'을 증명하는 영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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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인터뷰

각설하고, [인사이드 맨]은 [쇼아]의 방법을 차용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터뷰가 [쇼아]의 방법이었다면, 진실 그대로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영화가 아니라, 퍼즐과 스릴러라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선 상업영화의 코드를 쫓는다. 그건 좋다/싫다를 말할 수는 있지만, 옳다/그르다를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이 퍼즐은 꽤 즐겁다.

이건 스포일러라서 좀 꺼려지지만( -_-;; )
[인사이드맨]이 빌어오는 퍼즐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이다.


2. 미장센 - 2006년의 미국 ; 혹은 수용소

스파이크 리의 장점은 선동적인 에너지다.
다만 그건 실패하기 쉬운 장점이다. [인사이드 맨]에서 스파이크 리는 [말콤X]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렇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무슨 의미겠는가?

무엇인가 말하려는, 설득하려는 선동적 에너지는 쉽게 계몽적이며, 권위적이며, 목소리만 높아지는 오류에, 유혹에 빠진다. 그런데 [인사이드 맨]은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인사이드 맨]에서 진짜 전언들, 그 스파이크 리의 목소리는 화면 속에 숨겨져 있다. 진실은 항상 숨겨진 방식으로 드러난다.

[말콤X]가 그 도식적인 화면톤의 변화, 그 뻔한 스토리의 전개, 그리고 역시나 계몽적인 수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인사이드 맨]은 훨씬 복잡하고, 좀더 풍성하다. 나로선 [인사이드 맨]의 가장 놀라운 성취는 그 화면의 설계면서, 그 화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문득 문득의 미장센들이다. 그들은 억압되어 있으며, 갇혀 있는데, 놀랍게도, (은행에) 갇혀 있는 자들과 (미국이라는 기만과 억압에) 갇혀 있는 자들은 문득 문득 겹친다. 그러니 미국이라는 거대한 억압과 기만의 장치, 그 거짓말 상자 속에 인물들은 모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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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바깥, 또 다른 수용소

그리고 인질들은 누가 범인인지 알지 못하고, 모두가 범인으로 의심받는다. 그건 아주 비유적이지만, 분명하게 미국의 본질을 까발린다. 그들은 갇혀 있는 자들이며, 미국은 일종의 수용소에 불과한 거다. 그 지점에서 911의 기억이 만든 또 다른 수용소 미국의 이미지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으로서의 아우슈비츠와 겹쳐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성이라는 야만 위에 구축된 국가주의의 흔적이라는 점은 같다.


3. 역사적 진실과 그 해결 - 가짜 해피엔딩 ; 혹은 아이러니, 또는 유머

스파이크 리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덴젤 워싱턴은 역사의 진실을 믿는 자이고, 그 직업은 형사다. 조디 포스터는 그 역사적 진실을 덮기 위한 자본의 하수인으로 등장하고, 그 가운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 진실을 까발리기 위해 은행강도로 등장하는 클라이브 오웬이 있다. 그들의 승부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물고 물린다. 현실은 그런 난잡한 이전투구이며, 정치는 경제와 공모하고, 그들은 진실을 가장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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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들은 거래하고, 은폐하려고 한다.

그런데 영화는 손쉽게 해피엔딩으로 나아간다.
[인사이드 맨]에서 가장 아쉬운 건 그 결론이다.
정말 미국이란 사회에서, 그 기만의 공장에서 '진실'이라는 통조림을 만들기가 이렇게 쉬운 걸까?

그런데 그건 어쩌면 아이러니로서의 결론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유태인이 지배하는 미국사회에서 '껌둥이' 흑인이 그 유태인을 도와 나찌의 기억, 그 진실을 파헤친다. 그게 설마 가능할라구? -_-; 그러니 이 해피엔딩은 농담이거나, 유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결론은 정말 섬뜩한 결론이면서, 교활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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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소수자들, 흑인과 유대인


[인사이드 맨]은 결론의 불가해함, 혹은 그 함정을 염두에 두더라도 정말 의미심장한 영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어쩌면 스파이크 리 최고 걸작일지도 모른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비전 : ★★★★★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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