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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2. : 스펙사회에서 신나게 마녀사냥하기

2009. 11. 14. 14:50  |   TV/방송/광고  |   키노씨

글을 썼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되서 다시 한번 써본다. 각 문단 부피는 세줄 정도로 제한해본다. 별 의미는 없고, 짧게 쓰는 연습 혹은 트위터식 놀이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1. 루저녀 현상은 우리사회의 미성숙을 반영한다. 그 미성숙한 사회는 표상이 실질을 파괴한, 양자의 긴장이 해체된 사회다. 그 사회는 "얼굴 보단 마음"에 대해 즉각적인 조소 내지는 무관심이 완전히 승리한 사회다. "마음 보다는 얼굴" "성격보다는 외모"가 먼저인 사회 되시겠다. 나 역시 여기에 일조했다는 생각, 당연히, 든다.

2. 표상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사회. 외적 표지와 그 표지를 구성하리라 기대되는  내용이 완전히 따로 노는 사회. 결과가 과정을 압도하고, 표지(표상)는 이제 가치 그 자체가 된다(이게 '돈'이 갖는 성질이다). (경력, 학력주의와 상관없는)학벌주의는 이를 견고화한다. 며칠 전에 끝난 수능은 단일표준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획일성을 지지하는 주요한 물적 제도다. 

3. 스펙 사회. 획일화된 표준에 바탕한 과시적 표지는  대중적인 영역에서는 '스펙'이라는 유행어(담론)로 표출된다. 그게 미수다 루저녀를 탄생시킨 직접적 토양이다. 이제 비교는 강박이 되고, 질투와 시기는 가장 훌륭한 인간성이 된다. 스펙이 내면이고, 스펙이 도덕이고, 스펙이 인간성이다. 이 야만에 우리는 줄기차게 가담했다. 아파트라는 가장 대표적인 스펙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도덕성과 민주주의를 뭥미?시켰다. 가카는 그 상징이시다.

4. 그러니 지금 꽤나 고통받고 있을 루저녀는 예외적인 똘아이가 아니다. 그 20대 초반의 철부지 여대생은 우리 사회의 상식과 도덕에 대한 놀랄만한 돌연변이는 최소한 아니다. 오히려 우리사회의 놀랄만한 진화(혹은 퇴화)에 민감하게 반응, 잘 적응한 평범한 여대생의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고 봐야한다. 이건 남/녀 불문이다.

5. 그런데 나는 왜 그 발언이 "나치스럽다"고 호들갑 떤걸까? 그건 좀 구체적인 문젠데, 특히 미수다 제작진의 아무 생각 없는 무아지경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공영 지상파 TV 프로그램은 낸시 랭 류의 무개념 '전위 예술'을 아무 생각없이 틀어줘선 안되는거다. 제작진 총사퇴했다고 하던데, 아예 폐지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6. 미수다는 철딱서니 없는 오리엔탈리즘, 좀더 쉽게 풀면 우리 안에 내재된 '백인(미녀)'에 대한 모방적 선민 환상을 적당한 교양과 뒤섞어 우리에게 제공했다. 그게 미수다의 최대 미덕이었고, 또 한계였다. 하지만 미수다는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앞으로 남겨진 건 이미 지겹게 봐 온 꽃치장한 백인 미녀들의 착한 훈수 밖에 없다.

7. 트위터에서 미수다 루저녀 발언도 이에 대한 (과도한) 반응도 가련하다는 글을 읽었다. 마음 속 한편으론 크게 공감하면서도 정확히 취지가 잡히지 않아 질문해봤다. 이런 자극적인 이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지 않느냐, 뭐가 그렇게 가련한것인가? 라고.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8. 가련한게 맞긴 맞다. 루저녀도 가련하고, 이렇게 관심 쏟는 나도 가련하고, 이런 개차반 사회에서 아둥바둥대는 너나 할 것 없는 대한민국 중생들도 가련하다. 하지만 이건 무슨 초딩스런 열등감 문제만은 아니다. 이건 정말 스스로 쪽팔린거다. 거듭 확인하는 바, 이 개차반 사회를 만든 건 '그들' 뿐만은 아니고, '우리들'이다. 쯧쯔쯔..한다고 나만 그 개차반 사회에서 산신령이쥐. 이렇게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9. 이 사건이  '몰지각한 여대생의 안드로메다 발언'이라는 예외적인 해프닝이라면 '루저녀'나 '나'처럼 이 허접한 이슈에 관심 쏟는 몇몇 철없는 중생들을 가련하다고 조소해도 상관없다. 그 조소를 고맙게 기꺼이 받겠다. 나 하나 조소당하고, 이 사회가 건강하다는게 증명된다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10. 하지만 이 이슈는 우리사회의 야만을 상징적으로 증거하는 꽤 의미있는 사건이다. 4대강 삽질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은 4대강 삽질문제보다 더 힘들거다. 왜냐하면 4대강 삽질은 이 거대한  대한민국의 정신적 삽질 구조와 비교하면, 그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 그러니까 이 미수다 루저녀 사건은 예외적인 막장질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욕망(궁극적으론 생물학적이며 사회적인 배타적 붕가붕가 욕망)을 솔직하게, 그런데 좀  '포르노'식으로 묘사한 사건이다. 그게 차라리 순진한 포르노가 아니라 교양으로 위장되었다는 점은 이 인종차별적 퍼포먼스를 아주 역겹게 하는 이유지만, 문제는 사회가 이미 하드 포르노라는 거다. 그게 본질이다.

12. 그렇다면 그 루저녀 역시 이 이중적인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외적으론 경건하고, 고상하기 짝이 없는 우리사회의 이중성, 그 덧에 걸려든 것일 뿐이니까. 솔직한게 죄다. 룸살롱 텐프로 쭉빵녀를 욕망하는 평범한 남자동물의 욕망과 그 루저녀의 욕망은 별 다를게 없다.

13. 마녀사냥. 이건 좀 생각을 바꿔야겠다. 이번 건 역시 사회의 철부지에게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다는 측면에선 마녀사냥이 맞지만, 나는 이 마녀사냥이 좀더 커졌으면 좋겠다. 이 마녀사냥이 좀더 커져서, 바깥에 있는 그 힘없는 마녀만 쫓는게 아니라, 자기 안의 성찰없는 욕망을 숙주삼아 자라고 있는  그 진짜 마녀를 쫓는 것이길 바란다.

14. 마녀사냥의 효용. 한편 사회적으로 바라보면, '~녀' 사건으로 명명되는 이 마녀사냥, 인터넷을 통한 과도한 호들갑은 내가 증오해마지 않는 연예 찌라시즘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곤 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마녀사냥이라고만 치부되는 건 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댓글'을 읽으니 더더욱 그렇다. (다만 편의상 계속 '마녀사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15. 마녀사냥과 상식주의. 우리가 흔히 마녀사냥이라고 치부하는 일견 과도한 증오와 과장된 퍼포먼스에는 우리사회에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어지는 최소한의 '상식', 그 상식의 확인과 승리라는 사회적 순기능이 존재한다. 그건 우리가 여전히 상식 속에서 살고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16. 하지만 이 집단제의적 호들갑이 축제가 아닌, 일회적 삽질, 혹은 그저 희생양 만들기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이유는 거기에 '자기 반성적 성찰'과 무엇보다 '정치적 상상력'이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마녀사냥는 그저 힘없는 마녀를 저 정의의 화염 속에 불태우는 고색창연한 마초이즘의 광란이 되어버리곤 했다.

17. 그러니 좀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마녀사냥이 축제가 되려면, 즐거운 놀이가 되려면, 그 우리 안에 있는 마녀를 물리치고, 그 마녀를 키우는 각종의 기만적 담론기제들(가령 각종의 찌라시들)과 싸우며, 결국은 우리가 손가락질 했던 그 마녀라고 위장된 그 철부지와 대화하고, 그녀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18. 그게 졸 힘들고, 졸 어렵고, 졸 짜증나는 일이란 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마녀사냥이 그저 부질없는 해프닝의 가련함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건 그렇고, 이 거대한 사회적 퍼포먼스에는 그 최소한의 상식주의에 바탕한 다양한 문화적 시도(루저송), 상업적 시도(루저 티셔츠)들이 존재한다.

19.  '루저 티셔츠'. 반8이라는 업체에서 벌써 루저 티셔츠를 디자인해서 팔고 있더라. 그 발빠른 순발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다. 지인(이분은 화가. 디자인 및 자금 담당. ㅎㅎ)과 루저 디셔츠로 한번 장사(?)해볼까 궁리하던 중에 역시나 '준비된 업체'에 선수를 빼앗긴 거다. ㅡ.ㅡ; 다만 여전히 루저 티셔츠(와 이에 바탕한 뭔가...)엔 미련이 많다.

20. 그러니 마녀사냥이 갖는 이분법적 배타성과 폭력성을 순화시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문화적, 상업적 시도들을 정치적인 상상력과 묶어낼 수만 있다면, 이 마녀사냥은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한판 놀이, 혹은 축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이 축제를 부추기는 연예 찌라시즘도 반가운 우리들의 홍보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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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녀 단상 : 미수다 혹은 순진한 포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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