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21

영화 TV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

[프리뷰] 복면달호

2007. 2. 7. 22:01  |   프리뷰  |   키노씨

#. 어제(2월 6일) 서울극장에서 [복면달호] 기자시사회가 있었습니다.
#. 아참, 이 글은 스포일러와 (전혀) 상관 없습니다(물론 제가 보기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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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면달호 (2007, 김상찬, 김현수)
코미디.   114 분.   개봉 2007.02.15
그나마 왼쪽 아저씨가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살아있는 캐릭터다



 

이경규, 정말 연예계 떠나는거야? 

- [복면달호] 프리뷰





난 기자도 평론가도 뭣도 아니지만, 이 영화는 도저히 구원받기 힘든 영화다.
생각나는데로 간단히 적는다.  



1. [미녀는 괴로워]를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보고 굉장히 실망할 확률 높다. 상업영화라고 관객수준을 이렇게 무시하면 안되지...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철학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좀 심했다.


2. 차태현의 보컬은 솔직히, 내가 특이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듣기에 좀 민망하다. 김아중이랑 확실히 비교된다. 물론 김아중도 테크놀러지의 조력을 많이 받았겠다 싶지만.. 차태현은 노래 안하는게 나을 뻔했다(그런데 영화를 생각하면 도저히 노래를 안할 수도 없는 설정이고. - -;; ). 특히 락버전의 노래는 정말 듣기에 괴로운 수준이다. 그런데 실은 차태현 말고 이런 캐릭터에 맞는 남자배우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3. 영화가 주된 관객으로 목적한 가상적 관객의 연령이 몇살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이건 초딩과 중딩 사이다. 고딩만 되도 이 영화의 촌스러움에 대해서 아주 심하게 짜증낼 공산이 크다.



4. 노래를 사용하는 방식 - 특히[미녀는 괴로워]와 비교해서

이 영화가 '노래'를 사용하는 방식과 '미녀는 괴로워'가 노래를 사용하는 방식을 비교하면, 그 세련됨, 그 감수성에 대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70년대 멜러드라마의 관습에 의지해서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이게 음악(노래)에 대한 영화인데도!). 간단히 그 차이를 설명하면, 이 영화의 노래는 '내러티브의 배경'이고, [미녀는 괴로워]의 노래는 '내러티브의 속살'이다.  

어쩔 수 없이 '미괴'와 비교될텐데.. 두 영화를 모처럼 극장에서 모두 본 나로선,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미괴'를 두 번 보는 쪽을, 당연히, 선택하겠다.


5. 캐릭터의 비현실성

아무리 이 영화가 코미디의 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작정한 코미디 영화라고 해도 너무 심한 수준이다. 어떤 개연성도 없고, 어떤 심리적인, 실존적인 갈등도 없다. 그저 제스처와 캐릭터의 관성만이 있을 뿐이며, 그 관성은 뒤죽박죽이기까지 하다(이건 캐릭터의 입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없다).


6. 이 영화의 철학 혹은 도덕

트롯과 락에 대한 일반의 감수성을 도덕교과서로 풀이하는 그나마 철학이라면 철학이 통할 수 있는 관객들은 중딩이거나, 혹은 정말 음악에 대해서는 담쌓고, 아무런 관심도 없는 아저씨 아줌마일 확률이 높다(아저씨, 아줌마.. 이 표현에 대해선 어떤 비하의 의미도 없고, 일반의 감수성에 의지한 표현을 빌자면 그렇다는 거다).


7.
앞서도 지적했지만, 멜러드라마의 관습, 그 인물들의 심리선이 진행되는 풍경은 70년대 감수성이다(이건 복고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촌스럽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심하게 짜증나고, 심하게 웃긴다(이 영화의 코믹한 요소가 웃긴게 아니라, 멜러적 요소가 웃긴다, 짜증난다는 의미다 - -; ).


이 영화의 개연성과 리얼리티는, 코미디영화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 영화의 현실적 감수성, 그 현실을 살아가는 피곤한 관객에게 부여하는 판타지는 고리타분한 70년대 멜러드라마고, 초딩수준의 도덕교과서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지배하는 감수성은 코미디라기 보다는 SF에 가깝다.


8. 배우에 대해

임채무는 정말 아쉽고
여자주인공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고
차태현은 그럭저럭이다(내가 원래 차태현에 대해선 기대 자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 [구타유발자들]에서 놀랄만한 연기를 보여줬던 성악가 아저씨 여기서도 나오는데, 몹시 아쉽다.
하기는 이런 캐릭터라면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가 나와도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 별점

0. 총평점 : ★★ (별 다섯 만점)

1. 영화적 비전 : ★★
1. 대중친화적 코드 : ㄱ. 중딩 이하 ★★1/2.     ㄴ. 고딩 이상 ★1/2

2. 비주얼 : ★★
2. 내러티브 : ★1/2

* 좋은 잔상 : 임채무 부하직원으로 등장하는 아저씨 (그나마 살아있는 캐릭터로서는 유일하지 않나 싶다).

* 나쁜 잔상 : 영화 전체인데... - -;; 그 중에서도 차태현이 락한다고 깝치는 장면이랄지, 그 과장되면서 웃기지도 않는 무수한 장면들이랄지, 중간에 엑스트라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기획사 거물 딸내미의 목소리 더빙(이거 왜 더빙 썼는지 모르겠다)이랄지, 정말 비현실적인 아동용 SF 감수성의 설정들이랄지..



# . 대박예상
얼마나 많은 극장을 확보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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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우리시대의 캔디 - 미녀는 괴로워 (2006)

2007. 2. 4. 20:59  |   프리뷰  |   키노씨



#. 이 글은 스포일러와 (전혀) 상관 없습니다.

0. 속물 영화의 위대함

[미 녀는 괴로워](이하 '미괴')는 속물 관객들을 위한 영화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있는 그 속물근성이 어떻게 현실과 화해할 수 있는지, 혹은 그 현실을 속일 수 있는지를 그린 영화다. 그 속물에 나도 포함되고, 당신도 포함된다. 물론 이슬 먹고 구름똥 싸는 '거룩한 분'들은 예외다. 이 영화는 대박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에 대해서 만큼은 방귀 좀 뀐다는 관객들, 지적 속물근성에 쩔어버린 평론가들은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하면서 이 영화를 폄하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지 안그런지는 난 리뷰를 살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 런데 이 영화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정말 심각한 영화다(정말이다, 나 진지하다. ㅡ..ㅡ; ). 이 영화가 심각한 이유는, 우리시대의 속물근성에 대한 가장 교활하고, (그런 의미에서)현명한 판타지이면서, 또 우리시대의 문화가 표현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그 감수성의 표준과 한계를 제시하는 영화라서 그렇다.


문화(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괴물]이나 [가족의 탄생], [천하장사 마돈나]가 중요한 영화인 것만큼, '미괴'는 중요한 영화다.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혹은 대박터진 이유)를 생각나는대로 써본다. 이 영화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대박이 터져서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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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는 괴로워 (2006)
                                    120 분  |  개봉 2006.12.14

                                감독 김용화, 각본 김용화, 노혜영, 원작 스즈키 유미코 Yumiko Suzuki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코드에 대한 단상

 - 잔인한 우리시대의 캔디







1. 세속과 고결 사이, 물질과 정신 사이, 촌스러움과 세련됨 사이

'미괴'의 감수성은 전반적으로 '과잉'이다. 과잉 정서, 그 감수성은 이미 익숙히 반복된 과잉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과잉정서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상징하는 건 TV 연예프로그램들(이를테면 'X맨'이나 '여걸6', 혹은 '놀러와'나, '일밤'류의 허접한 -_-;)이다. 이런 유치한 소꼽장난 프로그램들에 가학적 정서가 포개진다. 그 가학심리를 조장하고, 유도하는 건 포털의 연예관련 뉴스들이다. 포털은 죽음마저도 이용한다. 물론 근엄하신 언론들도 방구나 뽕이나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리시대의 감수성은 과잉정서과 가학심리가 교배된 아주 살벌하고, 비인간적인 감수성이다. 그 과잉의 가학심리는 '비교'를 강요한다. 그리고 흔히 그 비교의 감정은 차별적 상품의 소비(명품족)와 누가 누가 잘났나, 누가 누가 돈 많이 버나, 누가 누가 이쁜가를 통해 표출된다.


여기에 '미괴'는 그런 살벌한 정서를 바탕으로 '꿈꾸는 캔디'를 등장시키는데, 그 캔디는 참 못생긴 캔디다. 그러니까 당신, 혹은 우리들(확률적으로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많고, 잘생기고 이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우리는 그 캔디를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때론 참 단순하다.


'미괴'는 그 살벌끔찍한 정서들을 충분히 '전형화'시켜서 표현하고 있다. 캔디가 있으니까 당연히 이사벨라 (X) 이라이자(O)도 있고, 당연히 테리우스(혹은 안소니)도 있다. 그러니까 '미괴'에서 우리가 무슨 예술적인 비전이나, 정치적인 비전을 바라는 건 말도 안되고, 우리가 기대하는 건 이 세속적이고, 가학적이며, 잔인한 현실을 어떻게 저 캔디가 통과할 수 있을까, 에 대한 호기심이다. 우리는 이미 캔디니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한편으론 성형수술이라는 테크놀로지(^ ^ ;; )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캔디의 진심이다. 그건 기술과 마음 사이, 물질과 정신 사이, 세속과 고결 사이에 있다.


'미괴'는 한없이 촌스런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르는, 혹은 거기에 있기를 기대하는, 세속 세계의 살벌한 마음 속에 있는 순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포장함으로써, 그 양자의 구도를 역전시킨다. 이제 촌스러운 것이 세련된 것과 섞이고, 고결한 것이 세속적인 천박함에 용서를 구하며, 마음이 물질에게 위로를 전한다.

쉽게 말해서, '미괴'는 우리가 우리 안에 내재된 세속적 감수성의 잔인함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그 한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제시한다. 이 영화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을 기존의 영화들이 보여줬던 촌스러운 형식으로 보여주는 대신에, 낭만적인 판타지로 촌스럽지 않을만큼 새련되게 채색해서 보여준다. 그건 충분히 현실적인 판타지이긴 하지만, 그게 판타지라는 건 변함이 없다.


결론은?
우리는 미녀를 좋아한다.
단, 그 미녀는 착해야한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속물이다.



2. 사족 하나 - 김아중

김아중 훌륭하다.
그 연기가 훌륭한 건, 물론 아니고, 그 가창력이 훌륭하다.
난 김아중 별로 이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 보니 역시 별로 이쁘지 않다. ㅎ
그런데 이 영화 보고나니까 귀엽다.



3. 사족 둘 - Maria

'Maria'의 달콤하고, 매혹적인 카타르시스가 없었다고 해도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성공했을까?

솔직히 'Maria'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것 같다.
어떤 평론가들은 '영화음악'이란 '(본질적으로) 이미지 매체'인 영화의 잔기술, 반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뭐,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음악' '사운드'를 별도로 분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괴'에서 'Maria'는 위 '1'에서 말한 그 심리적 갈등과 불안과 긴장과 모순을 일시에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아중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관객들은 이 '사운드'가 폭발하면서, 그 갈등과 불안과 묘한 이중적 긴장과 모순에서 해방된다. 이 카타르시스는 본질적인 해방은 아니지만(그러니 극장 밖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지만 ^ ^ ; ) 엄청난 쾌감이긴 하다. 


참고로 난 이 음악 샀다. - - ;;



4. 사족 셋 - 상업영화의 가능성과 위험

성형(혹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비정한 이면)이라는 이슈는 이미 지겨울 만큼 익숙한 소재이긴 하지만, 이걸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제까지 없었다. 그러니 '미괴'는 사회/문화적으로 익숙한, 혹은 고민될만한 가치가 있는 화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공로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충분히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는 그 재미의 이면에 있는 어떤 불편함, 어떤 현실과의 괴리, 혹은 재현된 현실의 모순에 대해 근심할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영화적 메시지, 혹은 영화를 통한 의제 설정은 그 의제가 관극 후에 충분히 '이성적으로' 고민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즉 그저 '수동적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쫓아서 탐닉했을 뿐인데도, 그 주제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관극'을 통해 고민했다는 착각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고민할 만한 '이슈'를 본격적으로, 혹은 은유적인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유토록 하는 힘은 '상업영화'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영화가 제시하는 '공론화'에 대한 가능성은 영화 자체의 몫이 라기 보다는 관객의 몫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렇듯, 영화 텍스트를 완성시키는 건 적극적인 '관객의 해석'이다.


트뤼포의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다시 보고, 글로 쓰자(영화를 만들지는 못해도 말이지).


 

5. 끝으로 별점 (별점 이거 싫어했었는데, 장점도 많은 거 같아서).

총점 : ★★★★ (5개 만점)

영화적 비전 : ★★★
대중친화적 코드 : ★★★★★
비주얼 : ★★★1/2
내러티브 : ★★★1/2

좋은 잔상 : 무대의 비주얼, 김아중의 보컬.
나쁜 잔상 : 중간 중간 과도하게 전형화된 과잉감정, 과잉캐릭터. 엑스트라(의 오버액션).


누군가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나눠서 재단할 수 있는가? 이거 무식한 짓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솔직히 그런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 발언의 취지는 긍정하는 바이지만, 관습화된 관극 태도, 그 수용적 감수성의 차원에서는 (편의상) 분리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차피 내 만족으로 쓰는 글이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을 위해서도 쓰는 글인 바에야 뭐, 이런 유치한 별점도 (읽는 사람에게) 유용하면 그만이지 뭐.


별점은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별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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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코드로 본 [은하철도 999]

2007. 1. 24. 19:21  |   리뷰  |   키노씨

#1. 요즘 좀 많이 우울하네요.
커피와 캬라멜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꽤 많이 봤는데요.
저에게는 꽤 많은 위로가 된 영홥니다.
[은하철도 999]죠.
정말 추억의 걸작이네요.
중간 글(짧다/길다에서)입니다.
단편적인 인상들을 생각나는데로 적어봅니다.

# 2. 아참, 이 글은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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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판 은하철도 999 (1979) - 마지막 장면





포르노 코드로 본 [은하철도 999]







1. 메텔와 테츠로 - 외디프스 컴플렉스 혹은 근친상간의 유혹


나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잔상은 (우리나라 TV상영시 기억인데) 메텔이 옷 갈아 있는 모습이다. 검정 블래지어와 검정 빤스. 내가 최근에 본 극장판에 그 모습은 없었지만, 메텔이 샤워하는 모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은하철도 999]는 노골적으로 여체를 신비화하고, 또 대상화한다(이건 비판의 의미라기 보다는 그냥 그렇다는 의미다). 그 정점에 메텔이 있다. 메텔이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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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츠로와 메텔의 키스장면


메텔은 정말 신비로운 캐릭터인데, 극중 테츠로(우리나라 상영시 이름 '철이')의 보호자이고, 어쩌면 테츠로의 연인이면서, 또 동시에 테츠로의 엄마(메텔의 형상은 테츠로의 엄마모습과 동일하다)이기도 하다.


2. 테츠로의 엄마 박제 - 네크로필리아(Necrophillia)

시체애호증. 이건 좀 엽기적인데, 말 그대로 '하드 고어(hard gore. hard core가 아니라 gore )'다.

이런 장면과 설정이 있었다는게 나로선 좀 놀라웠는데, 테츠로의 엄마가 죽는 장면은 기억이 있었지만, 기계백작이 그 시체를 박제한 장면이 있었던 건 전혀 기억에 없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TV 상영시에는 잘랐던걸까? (뭐, 나도 너무 어릴적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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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백작의 정부(?) [박제사진 대신. 이것도 좀 쎄긴하지만.. --; ] 


엄마의 나체(시체)가 박제된 그걸 테츠로가 본다.

정말 난감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3. 왜소 콤플렉스와 서구형미인 선호증
이건 다수의 일본만화가 갖는 경향이긴 하지만, [은하철도 999]에도 이 경향은 노골적이다. 일본남자들은, 아니 동양남자들은 (서구인들과 비교하면)당연히 덩치가 작다. [은하철도 999]가 1979년작이니까, 뭐 그 땐 더 그런 왜소콤플렉스가 심했을 것 같기도 하고. 암튼 투명한 나체로 서빙하는(이건 좀 심하게 노골적이다) 클레아도 그렇고, 메텔은 말할 것도 없고, 여해적 에메랄다스(좀 이름이 웃기다)도 모두 쭉쭉빵빵(--;;)이다. 그런데 그녀들이 사랑하는 남자는 땅꼬마 데츠로와 데츠로와 쌍둥이로 닮은 어떤 사내(이름을 까먹었다. 하록선장의 친구이자 에메랄다스의 애인, 그리고 데츠로가 갖고 있는 총과 모자의 원래 주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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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 그 자체, 메텔


이런 비슷한 설정은 [요술공주 밍키]에도 나오는 것 같다. 밍키 아빠, 그 임금님과 여왕. 여자주인공들은 쭉쭉빵빵인데 말이지. [요술공주 밍키]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밍키 변신하는 모습은 정말 다시한번 꼭 보고 싶은 장면 중 하나이긴 하다.

암튼 일본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런 설정은 신체적인 열등감을 극적으로 보상받는 '대리만족'의 차원이라고 쉽게 해석 가능할 것도 같다.


4. 서빙하는 나체 웨이트리스 - 클레아
정말 나체다. 좀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기계인간이다. 그 클레아가 [은하철도 999]에서 테츠로와 메텔을 서빙한다. 위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클레아는 테츠로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마치는 순정파인데, 그러니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테츠로를 사랑하는 설정이다. 정말 테츠로는 복도 많다. (잠깐 생각나서 적는데, 일본문화상품들, 가령 '노르웨이의 숲' 같은 소설를 예로 들어도, 왜 그렇게 남자주인공들은 별 볼일도 없는데 여자등장인물들이 쉽게 쉽게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이거 다 내가 보기엔 남자들의 성적인 환상에 대한 배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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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아와 차장



5. 영원한 걸작, 은하철도 999
보면서는 쓸게 많을 것 같았는데, 적어보니 별거 없다. 이 글 제목은 좀 과한 것 같기도 하고(미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죄송).


나에게 [은하철도 999]는 정말 영원한 걸작이다.

[은하철도 999] 보면서 우울한 마음이 좀 위로가 되더라.


[은하철도 999]의 세계관은 정말 묘하다. 그 과격한 묘사들하며, 그 성적인 상징들의 교묘한 배치하며, 인간과 기계의 역전된 상황설정(대체적으로 대개의 문화콘텐츠들에서 인간-기계의 가치는 인간이 월등하게 우월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은하철도 999에선, 물론 궁극적으론 인간의 우월함을 견지하긴 하지만, 테츠로는 기계인간이 되고 싶어한다)하며... 정말 매력적이고, 전복적인 이미지들이 (지금 보면 좀 촌스런 그림이기도 하지만) 종합선물세트처럼 거기에 있다.


[은하철도 999]는 소년 테츠로의 통과제의, 테츠로의 어른되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건 아주 도식적인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그 골격은 정말 뻔하다. 다만 이토록 과감하게, 이토록 전복적인 이미지와 대반전을 준비한 매력적인 영화는, 앞으로도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 그런데 벌써 거의 30년이 되어가는구나.


나중에 좀더 마음이 정리되면, 다시 보고, 좀 제대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끝.




이하 노골적이고, 결정적인 스포일러입니다.
앞으로 극장판 [은하철도 999]를 보실 생각이 있는 분은 읽기 전에 심각히 고려하시길 부탁드립니다.






* 참조 링크

네크로필리아 http://juny.tistory.com/1753077
하드고어 http://terms.naver.com/item.php?d1id=7&docid=8710




* 이 글은 포르노 프로젝트[PP]의 번외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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