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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베일은 나가리 : [T4 : 미래전쟁의 시작] 프리뷰

2009.05.26 08:15  |   프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 안내
이 글은 스포일러 (전혀, 민감한 독자라도 전혀) 없습니다.
개략적인 액션과 내러티브, 캐릭터간 상관관계와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간략히 서술합니다.


[터미테이터 4 :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감독 : 맥지. McG) (미국, 영국, 독일)
T4로 그래도 가장 재미를 볼 것 같은 세 명의 배우들 가운데 두 명(좌 : 안톤 옐친, 우 : 샘 워싱턴)
물론 가장 손해(?)볼 것 같은 배우는 크리스찬 베일이다.



며칠 전에 [터미테이터 4 :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이하 'T4')를 봤다. 간단한 프리뷰.


1. 공격적인 액션 vs. 식상한, 본듯한 내러티브
깜짝 놀랄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식상한 수준도 아닌, 꽤 성공적인 액션의 쾌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나 다양한 용도와 모습의 '기계들'은 흥미로운 영화적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이건 '장난감 장사'에서 재미 좀 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T4]를 철학하기 위해, 삶의 사유를 확장하기 위해 보러갈 관객들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시각적 쾌감을 주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다만 철학이나 민감한 사유의 촉감을 기대하는 것은 과하겠으나,  누구나 기대하는 '이야기'(드라마)라는 차원에서는 [T4]는 다소 실망스럽다. [T3]보다는 만족감을 주겠지만, [T1]의 혁신적인 비전이나 [T2]의 드라마틱하게 짜여진 액션의 속도와 쾌감에는 현저히 밀린다.

그러니 장난감 놀이도 썩 훌륭하고, 개개 액션의 완성도도 꽤 훌륭하지만, 액션들의 전체적인 구성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초반에 너무 진을 뺀다.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 없이 너무 달린다. 첫 감옥 장면 같은 심리적 긴장 요소(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미지-액션의 물리적인 이완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 물리적인 이미지-액션의 쾌감과 공격성은 대단하지만, 영화의 표피적인 내러티브는 좀 심심한 수준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이미지-액션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심리적인 긴장과 쾌감을 증폭시켜주는 내재적인 내러티브(심리적 내러티브)를 함께 끌고가지는 못한다. 이 부분에서 [T4]는 명백하게 실패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액션의 긴장감이 드라마의 긴장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건 이토록 화려한 액션영화인 [T4]의 가장 아쉬운 부분들 가운데 하나이며, 액션영화로서 결정적인 흠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역시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T2]의 제임스 카메론이 그리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T4]는 도입 - 전개 - 절정 - 결론의 과정이 정반대로 설계된 영화같다. 물론  관객들의 심리적인 기대 반응은 대체로 그 반대의 관극틀에 익숙해져 있고, 이것이 당연히 자연스럽다. 그래서 [T4]는 후반으로 갈수록 맥이 빠진다. 뭔가 식상하게 예상 가능하다. [T4]에서 구원(salvation. 영화의 원제목)은 도식화된 내러티브로 인해 어떤 감동도 전해주지 못한다.

2. 드라마 - 비장의 무기 : 마커스는 [T4]의 가능성이자 한계.
이 영화에는 드라마가 없다. 그 드라마는 막 생기려다가 사라진다.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내적 인과율이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혹은 그런 인과율이 도식성에 의해 파괴되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마커스라는 흥미로운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에 대한 흥미는 도식적인 상투형의 틀에 갇혀 반감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쉽게 말해 용두사미되시겠다.

'마커스'(샘 워싱턴. Sam Worthington. 1976)라는 인물은 [T4]에 그나마 내러티브에 긴장과 입체성을 부여하지만, 마커스와 마커스를 둘러싼 인물에 대한 식상한 수준의 도식적 장치들이 인물에 실존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채로 좌절하고 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T4]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긴 하다. 'IMDb' '스타미터 STARmeter' 에서도 출연배우들 가운데 가장 높은 Up200%의 상종가를 치고 있다). 마커스는 그 자신의 영화적 형상화에 실패함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 Christian Bale. 1974)에게도 부정적이 영향을 미친다. 함께 긴장을 증폭시키지 못하고, 둘이 함께 망가지는 형국이다.

이런 갈등적인 긴장관계라는 차원에서 당연히 [배트맨 : 다크나이트]가 떠오른다. [T4]의 마커스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마찬가지로 크리스찬 베일의 존재감을 '나가리'시키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액션의 공간적 배경도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기존 영화의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느낌이 강하다(T2의 특정 장면, T3의 시가전 액션신들은 노골적인 수준으로 빌려오고, '매트릭스'풍의 철학적 아리까리즘은 있어보이기 위해 빌려오고 있는 것 같다).

3. 크리스찬 베일은 어찌하여 나가리가 되었나...
나 는 크리스찬 베일을 꽤 좋아한다. 가령 그가 [머시니스트]에서 보여준 연기는 로버트 드 니로가 '성난 황소'에서 보여준 요술 다이어트와 맞먹는 수준의 감동을 준다. 물론 그 연기까지를 드 니로와 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친구는 정말 성실하군" 이런 정도의 감상은 충분히 갖게 해준다.

그렇게 열심히 연기하는 크리스찬 베일이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연기력을 늘 한결같이 보여주는 크리스찬 베일이지만, [배트맨 : 다크나이트]에 이어서 이번 [T4]에서도 자신의 영화적 존재감을 확보하는데 실패한다. 주인공은 주인공인데, 재미없이 뻔한 주인공이다. '마커스'란 인물의 등장은 마치 [배트맨 :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크리스찬 베일의 존재감에 극히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마커스란 인물에 내재된 갈등적 요소들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존 코너'를 식상할 만큼 평면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아쉬운 점은 [배트맨 : 다크나이트]에서는 조커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나마 성공하고 있지만, 이번 [T4]에서는 마커스도 어중간하게 멈춰서고 있다는 점이 다. 그리고 마커스와 존 코너, 그 둘 모두를 멈추게 하는 건 어떤 도전적인 질문도 없는, 어떤 존재론적 근심도 발견하기 어려운 액션영화의 관습적인 도식성이다. 그 도식성은 [T3]에서 "나는 기계다"를 외치는 아놀드의 민망뻘쭘함을 떠올릴만큼 촌스런 도식성이면서, 이게 무슨 [미녀삼총사]같은 섹시하기만 한 찌질 연작 버전으로 환골탈퇴하는 건 아닌가 우려하게 하는 노골적인 도식성이다.

4. 빛나는 조연, 안톤 옐친(Anton Yelchin. 1989).
' 카일 리스' 역을 소화하고 있는 약관의 안톤 옐친은 [알파독] 이후로 그야말로 '잘 나가는' 헐리웃의 무서운 아이일텐데, 이 젊은 친구는 [T4]에서도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극중 비중이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그리고 각본의 한계 역시 맹백하지만, 이런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도 이 젊은 친구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족한 연기를 펼친다. 조만간 수퍼스타급으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5. 헬레나 본헴 카터(Helena Bonham Carter. 1966)는 초큼 실망스럽다.
나 는 본헴 카터가 등장하는 영화는 무조건 기대 점수 플러스 1점이다. 그만큼 본헴 카터의 필모그래피는 흥미롭다. 내가 팀 버튼을 꽤 좋아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팀 버튼 마눌). 그런데 이번엔 좀 아쉽다. 본헴 카터가 연기한 '닥터 시레나'라는 인물은 마커스라는 문제적 인물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였다. 초반에 그토록 기대하게 만들더니, 편집에서 잘린 건지, 아니면 시나리오가 워낙에 개판이라서 이렇게 병맛이 된건지 헷갈리지만, 그녀의 영화속 캐릭터는 [매트릭스]의 '오라클' 짝퉁 버전이 아닐까 싶은 아리까리함과 코믹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건 뭐 아예 등장하지 않느니만 못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6.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 ^ (Bryce Dallas Howard. 1981) : 지못미..ㅠ.ㅜ;
살 이 찐건지 어쩐건지 인상 자체가 좀 이상하게 변한 것 같다. 임신설정이라서 그런가? 개인적으론 이상형에 속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다. 샤말란의 [빌리지]와 [레이디 인 더 워터]에서는 정말 반해버렸다. 샤말란이 꿈꾸는 구원의 여성형을 대표하는 샤말란의 페르소나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했던 배우다. 개인적으론 [빌리지]와 [레이디 인 더 워터] 두 작품 모두 샤말란의 자뻑만을 빼면 꽤 좋아하는 영화고...  그런데 이번엔 [T4]에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스테레오타입의 캐릭터를 그저 그렇게 연기한다. [스파이더맨3]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재 동시 개봉중인 아버지 영화([천사와 악마]의 론 하워드가 그녀의 부친)에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제목만으로 본다면 [천사와 악마](난 이 영화 아직 보지 못해서리..;;;)에 출연하는게 훨 어울려보이는데 말이쥐.

7. 문 블러드굿(Moon Bloodgood. 1975) : 유일한 로맨스
왠지 친근한 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살펴보니 엄마가 한국인이란다. [T4]에서 그래도 꽤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캐릭터라는 한계 때문에 스테레오타입에 머물고 만다. 그래도 꽤 인상적인 캐릭터들 가운데 한명이긴 하다(현재 IMDb '스타미터'에서 이번 주 Up198%라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만약 '너 왜 그랬니?' 이렇게 가상으로 질문을 하면 문 블러드굿(이름 참 독특하다)이 연기한 '블레어'는 '영화 속 설정이니까!' 이렇게 대답할 것만 같다.


8. 마이클 아이언사이드(Michael Ironside. 1950) : 저항군 사령관 아저씨
어릴 적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V](1984)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기억하지 못할 친구들이 더 많겠고나... 덧. 링크를 클릭하면 ABC에서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 우연히도 글을 쓴 뒤에 알게되었다능.. ) 거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는 [T4]에서는 좀 뻔한 연할이다. 그래도 참 반가웠다능. [머시니스트](2004)에서도 크리스찬 베일과 공연한 바 있다.

9.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 1939)
뭔 가 있어 보이는 포스를 풍기는 할머니 역할인데... 잠깐이긴 하지만 인상적이긴 하다. 그런데 비중이 너무 작고, 소리소문 없이 지워져 버려서... 뭔가 더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겠다. 에미상 여우조연상(웜 스프링스. 2005)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성격파 배우라고 한다.

10. 제이다그레이스 (Jadagrace. ?)
'스타'라는 마스코트 역할로 등장.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고, 뭐 그냥 귀여운 꼬마 역할이랄까... 과묵한 설정인지 벙어리 설정인건지 좀 헷갈린다.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진지해지면 손해일 듯.






박찬욱, 길을 잃다 : [박쥐] 프리뷰

2009.05.05 09:28  |   프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 (전혀, 아주 예민한 독자라면, 거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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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그로테스크한 블랙유머...



0. 흥행 : 롱런은 힘들겠다
나 는 박찬욱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누구처럼 '박찬욱의 걸작, 아찔하다'라는 환호 가득한 제목을 나 역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염려다. 이후의 박찬욱 영화는 제작사로부터 꽤나 압박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그런 불길한 예감. 전작인 [사이버그지만 괜찮아]가 관객들과의 교감에서 실패했다면, 이번 [박쥐]도 느낌이 안좋다. 쉽게 말해서 재미없다(그렇다고 흥미롭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찬욱과 송강호라는 이름값 때문에 초반에야 관객이 들겠지만(글 쓴 뒤에 살펴봤더니 올해 개봉작들 중 최단 기간 100만 돌파란다), 최소한 '입소문'으로 롱런하기는 매우 어렵겠다.

" 머리 나쁜 아이들은 입 좀 다물지?"  이렇게 스스로 바보선언하는 촌평들이 노이즈 마케팅에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글쎄.. 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슨 자연주의니 라캉이니 지젝이니 운운하는 '마루타비평'(아래 4. 참조)이 도움을 줄까? 글쎄, 이것도 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흥행은 개봉 둘째 주부터는 좀 급격하게 고전하지 않을까 싶다.

[박쥐]에 관한 말말말들은 풍성하겠지만, 그 거품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마더]가 얼마나 해줄수 있을지가 개인적으론 관심사다. 사족이지만, [마더]는 그냥 [마더]가 아니라 [마더 by 봉준호]다. 그러니 기상천외한 '봉준호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왜 박쥐에선 'by 박찬욱'이라고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박찬욱이라는 이름값은 수식할 필요도 없을만큼 넘버 원인건가? 농담이지만, 이런 촌스런 마케팅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는다. 'by 봉준호'라뉘.... 봉준호도 참 민망뻘줌하겠다.

1. 박찬욱 필모그래피 내부에서의 비교 고찰 : [복수는 나의 것]의 부조리극 버전
일단 [달은 해가 꾸는 꿈]이나 [삼인조], 그리고 [사이버그...]는 제껴놓고.
[박쥐]는 [복수의 나의 것]처럼 파격적인 블랙유머나 창조적인 그로테스크 이미지, 의미심장한 엔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과감하면서도 성찰적인 정치적인 비전이 느껴지지도 않으며, [올드보이]처럼 액션의 쾌감이나 내러티브의 입체적인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블랙유머라는 점에서는 매너리즘이 느껴지고, 그로테스트한 이미지들은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함의를 추출하기에도 뭔가 삐리리 하다.

소위 '복수 3부작'은 박찬욱 영화의 기본 코드인 정치적이며 성적인 결핍으로서의 욕망, 그로테스크한 인공적 이미지, 연극적이고 과장된 인물 등을 공히 담고 있다. 무엇보다 박찬욱 영화는 '시대와의 불화'(이문열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고...;;)라는 심리적 배경을 갖는데, [박쥐]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 시대는 뭔가 잘못됐다'라는 근원적인 불안과 그 불안을 전복시키려는 저항의 이미지, 그 불안과 저항이 세속적인 욕망의 차원에서 서로 엉키고, 다시 풀어지는 그 놀라운 변증법적 모순과 극복의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박쥐]는 뭔가 좀 엉성한 느낌이랄까, 덜 조율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기존작들 가운데 가장 닮은 건 [복수의 나의 것]이다. 다만 [박쥐]는 훨씬 더 연극적이고, 평면적이다. 공간적인 배치도 그렇고, 인물들의 상징성도 그렇다. 내러티브의 논리적 인과로 보자면, 이건 스토리가 말이 되나 안되나의 피상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 완결성(설득력)에서 [복수는 나의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흥미로운 건 [쓰리](옴니버스 영화. 박찬욱이 연출한 '흡혈귀'에 관한 에피소드)와의 유사성이다. 전혀 다른 감수성이지만, 차라리 [박쥐]가 [쓰리]의 확장 버전이었다면 훨씬 더 볼만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좀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밀어 붙이거나, 혹은 연극적인 인물들의 속성들을 좀더 자연스러운 인과를 갖고 배치했어야 했다. [박쥐]는 아무리 우호적으로 봐도 어중간하다. 이건 무슨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를 이야기해야 하는 국면이 전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양반들은 물론 있다). 무엇이든 좀더 확실하게 선택했어야 했다. [박쥐]는 너무 엉성하게 작위적라서 인물들 간의 유기적인 연계와 속성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심지어는 김옥빈이라는 인물은 그 인물 내부에서조차 그 성격이 따로 논다. 이건 인물의 입체성이니, 내러티브 진행상 자연스런 인물의 성격 변화니 이런 것과 상관없이 인물 형상화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언젠가 박광수가 [베를린 리포트]를 찍었을 때 들어야 했던 '기계적인 작위성'이라는 비판에서  박찬욱도 자유로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베를린 리포트]처럼 엉망으로 작위적이진 않다. 송강호는 여전히 설득력을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이긴 하다. 다만 아무리 박찬욱이라고 해도, 송강호나 김혜숙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닌 건 아니거다.

2. 그로테스크와 블랙유머 사이,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길을 잃다.
우 리 시대의 음란함과 탐욕에 대한 역설적인 교훈극이라고 [박쥐]를 해석한다면 가장 상식적인 해석일 것 같다. 그 음란하고, 탐욕스러운 이미지들은 박정희시대 삘나는 한복집의 기괴한 이미지들과 겹치면서 더더욱 음산한 느낌으로 살아난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더 나가지 않는다. 그냥 과거회귀적이고, 그냥 기괴하다. 그저 쉽게 해석가능한 수준에서 인간의 본능과 종교적 성스러움의 대비, 자기 희생과 파괴적 욕구의 대비, 일상성으로서의 속물코드와 그 일상성을 뛰어넘는 박찬욱 영화의 시각적 테마의 변주로서 크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의 반복. 이게 다다.

하지만 박찬욱 영화에서 기대하는 건 이런 뻔한 차원에서의 식상하게 짜맞춰진 교훈극이나 평면적인 이미지들의 조합이 아니다. 이율배반과 속물근성, 그리고 결코 딴 몸이었던 적 없는 정치적인(권력적인) 욕망과 성적 욕망의 이미지, 그 겹침과 엇갈림은 내가 박찬욱 영화를 특별하게 평가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들 가운데 하나였다. [박쥐]에서도 그런 시도들은 물론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걸 형상화하는 박찬욱의 의도가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는 미지수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내심 영화를 보는 동안 가령 '장자연 사건'들 따위를 [박쥐]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박쥐]는 그럴만한 상상력의 여지를 관객에게 마련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미지의 이미지들이 연속적인 이어짐으로 설계되는 일종의 커다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주된 속성과 종된 속성의 계산된 조율, 비유자하면 일종의 주조색 설정이 필요하다. 비극이 주된 색인지, 아니면 희극이 주된 색인지, 그 양자는 어떤 거시적인 테마 속에서 서로 거시적인 디자인 위에 배치될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박쥐]는 이게 뒤죽박죽이다. 서로 단절적인 평면으로 이어진 이질적인 모자이크 같다. 이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양 요소가 완벽한 수준에서 서로 불가분의 요소로 호흡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그래서 내적 내러티브의 설득력이 거의 바닥 수준으로 내려가 있다. 이런 내적 내러티브, 이미지 그 아래에서 호흡하는 내적 설득력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성취된 영화는 개인적으로 판단한다면 [복수는 나의 것] 혹은 [친절한 금자씨]다. 결정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서 박찬욱은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염려마저 자아낸다.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니면 [친절한 금자씨]처럼 그 양자가 완벽하게 서로에게 속한 희비극인가? [박쥐]는 모호한 지점에서 멈춰서고 있다.


3. 연기 : 썩 훌륭하다.
특히 송강호와 김혜숙은 대단히 훌륭하다. 다만 김혜숙의 이미지는 필요 이상으로 그로테스크하고, 김옥빈은 열심히 연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함량 미달을 자인하고 있으며, 송영창의 등장은 의도적이면서 가장 의미심장하기는 하지만 너무 비중이 약하다. 신하균과 오달수는 거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전 이미지들의 변주라는 성격이 강해서(물론 신하균이 훨씬 망가지는 이미지로 헌신하고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박쥐] 에너지는 절반 이상은 송강호에 의존하고 있는데, 송강호는 역시나 막강 연기력을 뿜어낸다. 송강호의 연기'만' 감상하기 위해 극장에 찾겠다는 관객들이 절대 다수라면 이 영화는 강추다.  하지만 송강호의 연기'도' 보기를 원하는 관객들이 상식적이라면, 박찬욱은 뭔가 좀더 대답을 들려줬어야 한다. 여기에는 그게 없다. 있어도 좀 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가 지적한 "개인취향의 수집품"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지만, 이런 거대 배급망을 갖는 영화를 '개인취향의 수집품'으로 한정짓는다는 건 한국영화의 풍토에서는 대단한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4. 어떤 문화평론가의 스포일러 만발한 계몽 리뷰에 대해 
어 떤 텍스트도, 그것이 회화이든, 조각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영화이든 간에, 대부분 언어를 통해서 해석되곤 한다.(물론 모든 예술작품들은 서로 상호간 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모든 예술적 표현형식도 공히 '언어적'이라는 속성을 갖는다. 각설하고, 영화를 해석함에 있어서 표피적인 내러티브, 쉽게 말해 줄거리를 문자적(문학적,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문자중심적 태도를 프랑소와 트뤼포는 가장 저주했다. 나는 여기에 기꺼이 공감한다. 영화는 '문학'이 아니다. 이것은 자명한 것이다. 사족으로, 경계해야 하는 트뤼포의 태도도 있는데, 트뤼포는 '가장 후진 감독의 걸작보다는 대가의 졸작이 위대하다'는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일방적인 '박찬욱에게 경배를~!'도 좀 내가 보기엔 좀 이상하다.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에서 '요즘 유행하는 서구의 지적 사조'를 영화에 갖다대는 (정말 지긋지긋한) '강단식 비평'에 대해선 영화와 같은 대중적인 예술 형식이 어떤 비평을 요구받고 있는지를 심각한 수준에서 고민하게 한다. 즉, 이런 관객들, 혹은 독자들의 반발은 저널리즘 비평과 소위 '강단식 비평'의 위기를 반영한다. 영화를 통해서 철학을 논하지 못할 이유는 없고, 오히려 영화를 통해서 문학과 철학을 논할 수 있어야 하지만, "필자의 지젝과 정신분석학 학습을 위한 마루타로 영화를 갖다 대주고 있"다고 독자들이 느낀다면 그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프레시안의 박쥐 영화평은 아마도 '포털'에도 송고되어 메인에 노출되었거나, 해당 포털의 하위 영화 서비스 페이지에 링크된 것 같다. '식인토끼'의 영화촌평이 인상적이다. : )
*   명수(210.***.59.62)  | 2009/04/28 14:01:45
영화 개봉된 지 한참 지났으면 모를까 상당수 사람들이 영화를 못본 상태에서 이런 영화평을 올리는 의도는 뭔가요. 포털 영화평이 본인 일기장 속 감상문인가요.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과도한 줄거리 노출. 심히 거북하네요.

* ssip(218.***227.236) | 2009/04/28 13:37:57
이런 영화평 이제 지겹고, 짜증이 나고, 읽으면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영화 자체에 대한 진지한 비평보다, 필자의 지젝과 정신분석학 학습을 위한 마루타로 영화를 갖다 대주고 있는게 아닌지...

* 열심자(164.***.115.157) | 2009/04/28 09:56:55
이 평론이 나쁜 이유: 첫째, 스포일러가 아무런 경고없이 불쑥 튀어나온다. 반전 없는 영화라면 결론을 미리 말해버려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둘째, 일반인이 읽기에 너무 어렵다. 경제전문가 아닌 대중을 위한 신문에서 경제평론가가 자본의 한계대체율 체감이 어쩌고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면, 그게 제대로 된 평론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신문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지젝이 무슨 말을 한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른다. 대중이 읽기에 조중동보다 더 쉽게 쓰지 않으면 절대 조중동을 넘지 못 한다.

* 식인토끼(119.***.88.156) | 2009/04/28 09:41:58

18세 이상만 읽기 (more..)


* Gazer(59.1***15.105) | 2009/04/28 09:38:29
우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라캉과 스포일러를 만났다.

- 팜므파탈을 이기지 못한 뱀파이어, <박쥐> (기사입력 2009-04-27) 의 독자평 중에서


위 영화평에서 송강호와 김옥빈이 '공중 널뛰기(?)'하는 장면에서 극중 김옥빈이 느꼈을 일탈적 쾌감을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선 크게 공감하고, 이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인상적인 장면들은 종종 만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로서의 작품 속에 스며들지는 못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론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중적인 친화도라는 차원에서는 평가하는 리뷰어인) 이 동진이 왜 걸작이라고 이야기하는건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리뷰든, 프리뷰든 절대 피하는 입장이라서 제목만 봤는데, 이동진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이동진 리뷰는 이 글 쓴 뒤에 좀 확인해 봐야겠다.  왜 걸작이라고 생각하는건지 궁금하다(리뷰 제목이 '박찬욱의 걸작, 아찔하다'임). (이 글을 모두 다 쓴 뒤에 이동진의 리뷰를 읽었다. 읽고보니) 내가 왜 이동진을 별로 안좋아하는지 알겠다. 아찔하게 맹탕이다. 농담이고, 내가 부정적으로 해석한 요소들을 거의 모두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만 이창동을 떠올린 부분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뱀파이어 영화의 관습에 대한 전복이라는 부분에 대해선, 그냥 웃었다. 멀리 갈 것 없이 [렛미인 Let me in. 원제 : Låt den rätte komma in. Let the right one in(2008. 스웨덴)]이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렛미인]은 뱀파이어 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넘어선다는 그 창조적 파괴라는 측면에 한정한다면  [박쥐]보다는 뛰어나다.  

5. 기타
ㄱ. 원작 :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Therese Raquin)
엔 드 크레딧을 볼까말까 하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지켜봤는데, 원작이 에밀 졸라의 '뭐시기'(계속해서 자리에서 뜨는 관객들이 화면을 가리는 통에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라고 써있다. 지금 찾아보니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켕(Therese Raquin)'. '테레즈 랑켕'은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이름이라고 한다. 자연주의 소설로 문학사에서는 분류. 박찬욱이 10여년 전에 읽었던 소설인데, 모티브가 되었다고.(참조글)

ㄴ. 스포일러에 대한 불안
점 점 더 영화평에 대한 스포일러의 불안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나 개봉 초기 영화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 해당 영화에 대한 어떤 평도 접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직전 우연히 RSS 리더를 읽다가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한 블로거벗의 [박쥐] 관련글을 읽었다. 아뿔사!.첫 줄에 결정적인 스포일러(영화 볼 독자들은 알아서 클릭하기)가 있었다. ㅡ.ㅡ;;; 그 결론을 미리 알고 봐서 영화에 대한 감흥이 상당히 추락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마음 한편에선 여전히 들지만, 다행스럽게도(?) 결론을 몰랐다고 해도 감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무튼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스포일러는 매우 유쾌하지 않은 것임에 분명하다. 위 프레시안 기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동진의 해당 리뷰에서도 스포일러에 대한 안내는 부실한 편이다. 나처럼 스포일러에 예민한 독자들이 읽으면 짜증이 날 법도 싶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돕는 101가지 방법

2009.04.13 16:37  |   단상들  |   키노씨

* 혹시라도 글이 길다 싶은(줄이고 줄인 글이지만) 독자는 4. 이하만 읽어도 족하다.

0.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지난 3월 31일 공식 해체되었단다(공식 해체 소식 자체를 비중있게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한편으론 부끄러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뭐 세상일이 그런거지. 내 앞가림 하기도 남은 거리가 42.195다.


1. 정명훈 vs. 목수정 이야기는 이제 나올만큼 나온 것 같다. 나도 관련글 쓴 적 있고, 이에 대한 6dgf의 의견도 블로그에 옮긴 바 있다. 아직도 정명훈과 목수정에게 붙잡혀 있는 건 좀 심하다. 이제는 정말 국립오페라 합창단을 이야기할 차례다.

2. 솔직히 그건 지루한 얘기다. 정명훈과 목수정에 관한 자극적이고, 섹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별별 더럽고, 유치한 감정까지 다 긁어내는 그 섹시하고, 병맛스럽게 현학적이며, 거지같은 난장판 논쟁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우리 삶처럼(아, '우리'가 불편한 독자들은 '내 삶처럼'으로 읽어주길) 지지리궁상인 그런 이야기, 비정규직 음악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물론 거기에서 재미의 요소를 끄집어내는 건 재능이겠으나.  

3.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더 얘기하자. (이 얘기 지겨운 사람은 생략 권장)
예의 논쟁도 좋고, 목수정 싸가지도 좋고, 정명훈 꼴보수도 좋고, 진보니 보수니, 연대니, 예술가와 대화하는 법이 니 다 좋다. 의견이 설득력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좋다. 목수정을 무슨 사이코패스나 새디스트로 모는 것도 보기 좋지 않지만, '진보와 연대'라는 수사가 무슨 대단한 훈장이라도 되는 양, '진보신당 지지자'인게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폼나는 악세사리인 것처럼 그러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렇다. 그렇게 소아병적이고, 자아도취적인 공격적 수사 남발하면, 그나마 있던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마저 날아가버릴 것 같다. 정말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런다. 진보가 그렇게 쉬운 거면 나라꼴이 이렇지는 않을거다. 언젠가 행인은 진보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 그런데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노동자"가 가지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적 수준을 도외시한다. [....]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조차도 우리의 한 일부이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진보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행인, 진보의 재구성  중에서) 


'정명박'이라는 임시필명을 사용하는 이는 '정명훈 vs. 목수정' 관련글들에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기곤 하는 것 같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봤고, 내 관련글에도 봤다.


이명박과 정명훈의 공통점은 마인드가 똑같다는 것이다!
이MB : 상위1% 국민을 위한 정치.
정MB : 상위1% 예술인을 위한 행위.
그리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찬성도 이명박과 똑같은 생각이다. (정명박, 이라는 임시필명)


쿨한 것 좋아하는 얼음집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는 상위 1% 진보를 위한 글쓰기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런 선민의식, 그렇게 혼자만 똑똑해서 다른 무식한 종자들은 입닥치는게 딱 좋다는 식으로 쓰는 그런 마인드로는, 그네들이 말하는 진보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진보' 역시 1%를  위한 것을 영영 넘지 못한다. 이건 내가 장담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 친구들에게 꽤 호감을 갖고 있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싶다.

좀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폼 안나더라도, 유치하고, 부족하더라도 뭔가 실천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거다. 나도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정명훈이 실망이네, 목수정이 고문관이네, 예의가 어쨌네, 위기관리가 어쩌네,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중요하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고민할 수 있고, 나와 너를, 그리고 관계와 사회를 성찰하는 재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주 의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이야기라는 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어떻게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도울 수 있을까, 이런 좀더 실질적이고, 좀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할 차례다.

3. 물론 답답하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스피커(담론권력)가 크지도 않고.. 쥐뿔 마음만 너무 멀리 달려가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을 쓰는 일이다. 문득 글이란 얼마나 위대하며, 또 얼마나 무력한가?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국립오페라합창단에 대해 글을 쓰는 일, 정명훈을 지지하던, 목수정을 옹호하던 그런 걸 다 떠나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일. 이 일들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정명훈이 당한 부당함에 대해 목수정을 비판하던, 아니면 사회적인 연대의식에 소홀한 정명훈을 비판하며 목수정을 옹호하던 간에,  대체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하는, 그네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대체로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명훈, 목수정은 이 쯤에서 그만 잊자. 언젠가 한영애가 노래한 것처럼 이제는 '어떻게'가 중요하다.

4. 몇 가지 제안
1) 모금
싸움에도 돈이 필요할테니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를 위해 모금을 하는 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일테다. 실은 이게 가장 확실하게 돕는 '자본주의식 방법'이긴 하다.

2)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 블로그
그런데 노조 홈페이지나 노조 블로그나 그런건 어디 있는거지?
합창단 노조 홈페이지나 뭐 그런 거 있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발견되지 않는다. 거리에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에서 노조의 입장을 홍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목수정이 자기 한몸 희생(?)해서 노이즈 마케팅도 해줬겠다, 멍석 제대로 깔려 있다. 티스토리 같은 곳에서 블로그 하나 만들어서 애드센스도 붙이고, 성금 마련 배너도 붙이고, 그러면 얼마나 좋나?


3) 블로거들이 알아서 도와준다. 만들기만 하시라.
혹 시라도 노조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 블로그' 만드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난다 긴다 하는 블로거들은 정말 천지 삐싸리일거다. 이글루스에서 '연대' 외치는 젊은 친구들도 앞장 서서 도울거고. 거리에서 시민들 상대로 호소하고, 문화부 건물 앞에서 피켓 들고 싸우는 것도 좋은데(지금은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인터넷 시대인가, 이런 것들도 좀 생각해주시라.

4) 거기에 '현장 취재' 좋아하는 다음 블로거뉴스도 있다.
다 음 블로거뉴스라는 유사 저널리즘 유통망에서도 자기들 한 짓이 있는데 외면하지야 않겠지. 정명훈 vs. 목수정 이슈 띄울 때는 좋아라 하다가 '국립오페라합창단 블로그에서 '그 날 그 날의 싸움'들을 '현장에서 스스로 취재해서' 기록하는데 모르쇠하면 정말 걔네들은 '진보삘 나는 선정주의'를 여타 트래픽 장사의 구색맞추기로 끼워넣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거다. 물론 다음 블로거뉴스에 블로기즘이나 저널리즘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좀 넌센스이긴 하지만... ;;


5) 메타블로그들이여 연대하라(ㅎㅎ).
이런 좋은 일에는 이벤트도 좋고, 삼벤트도 좋으니(썰렁. 안다. ㅡ.ㅡ; ) 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달라. 합창단노조 블로그 만들어지면 좀 배너도 올려주고(하다못해 피자헛 후원받는 블사조도 배너에서 띄어주는 판에), 블코 같은 곳에서는 블로거 인터뷰 같은 것도 좀 시도해보고... 미디어성을 강조하는 메타블로그들이라면 이런 참여적인 이슈들을 통해 블로거들에게 좀 확실히 어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6) 진보신당이나 레디앙 기타 등등
그냥 말로만 돕지 말고, 좀 뭐라도 제대로 지원을 하면 좋겠다. 이미 그 '실질적인 조력의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좀 알려주시라. 좀 알고 싶다.


7) 노조 블로그를 통해서 (유료 후원) 공연 같은 거 기획도 하고 좀 그래달라.
내 없는 돈 탈탈 털어서라도 그 공연 반드시 가서 문화생활 할 용의 있다. 피켓 들고 징징거리기(악의없는 표현이니 좀 이해해달라)나 도와줄 생각 쥐뿔도 없는 정명훈 등에 업고 노이즈 마케팅하는 방식으로는 솔직히 실효적인 호응을 얻어내기 어렵다고 본다. 뭔가 즐기는 싸움, 뭔가 보여주고,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그런 싸움을 해주시라.


101가지 방법들 가운데 이제 겨우 일곱 개 썼다.
나머지 94가지 방법들은 동료블로거들과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아참, 레오포드(leopord)가 기꺼이 동감을 표해준 제안이 하나 있다(물론 어떤 이가 비밀글로 남긴 것 같은데, 별 새로운 제안은 아니고), ' 블로거들이 자신이 관심있는 사건에 대해 끝까지, 아니 가급적 오래 오래 기억하고, 새로운 소식 있으면 생각하고, 짧게라도 한 줄 씩 쓰고... 그렇게 '메멘토 리스트'에 이 사건을 남겨두는 건.. 합창단노조를 돕는 가장 쉽고도, 블로거다운 방법이라고 본다. 레오폴드의 첫 번째 메멘토 리스트가 '합창단노조'다. 가급적 오래 오래,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관련 이슈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방법을 고민하고, 그 기억을 삶과 블로깅 속에서 내면화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합창단을 돕는 93가지 방법(단계)이 남아 있다.
어서 어서 채워주시라.

* 안내
이 글은 일절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글이다. 복사를 하건, 스크랩을 하건 전적으로 자유다. 상업적인 사이트에 올려도 상관없고, 변경과 수정도 맘대로 하시라. 물론 결정적으로 그럴 만한 (좋은) 글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겠으나... 좀 그래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관련글 및 팟캐스트
선동과 선동사이 : 정명훈 vs. 목수정
목수정 논란에 대한 대담 (미디어토크) : 입장차이가 너무 동어반복적으로 계속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지만, 역시나 입장차이가 생겨야 이야기하는 맛도 난다.


* 관련 추천글
6dfg, 정명훈 vs. 목수정 : 명예훼손 성부 판단

* 발아점
[시사 티켓] 정명훈 감독님, 기도하세요 (씨네21, 김용언)
위에 링크인용한 김용언의 짧은 글은 피상적 휴머니즘 가득한 감상적인 선동으로 평가할 수 밖에는 없겠다. 김용언은 목수정의 일방적인 주장(의 근거로 선별된 정명훈의 발언)을 토대로 정명훈을 조롱조로 훈계하는데, 이런 방식은 전형적인 조선일보 방식이 다. 말미 '브래스드 오프' 인용은 뭐랄까, 참 글 쉽게 쓴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그 휴머니즘에 나는 물론 기꺼이 공감하지만, 그 방법에 동의할 수는 없다. 그 방법, 태도는 결국 목적을 지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런 고민도 없는 상투적이고, 진보삘 나는 휴머니즘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씨네 짤막 칼럼을 통해서 소식도 듣고, 글도 써야지 했기에... 발아점으로 기록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생각없이 쉽게 쓰는 글에 대해선 찬성하기 어렵다. 김용언이 과연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고민을 갖고 있기는 한건지, 목수정의 글은 정말 제대로 읽긴 한건지 의문이다. 좀 많이 유감스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