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vs 송강호 - [우아한 세계] 프리뷰
2007. 3. 26. 22:49 | 프리뷰 |
#. 오래간만에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우아한 세계]에 대해 짧게씁니다.
이 글은 프리뷰입니다. 스포일러 (전혀 혹은 거의) 없습니다.
후에 좀 긴 리뷰도 써보고 싶군요.
우아한 세계 (2007)
한국. 드라마. 112 분. 개봉 2007.04.05
한재림
송강호 : 강인구 역
박지영 : 인구의 아내 미령 역
오달수 : 강인구 (ㅂㄹ)친구 역
김소은 : 인구 딸 역
0. 송강호
이 영화는 송강호로 시작해서 송강호로 끝나는 영화다.
쉬운 비유를 하자면, 송강호의,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다.
내가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처음 내뱉은 말은 이랬다.
"이거 완전 송강호 모노드라마잖아!"
그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파워 넘버 원 배우이면서, 이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 송강호라는 대한민국 대표 아이콘이 이 영화에서 상징하는 건 무엇인가?
그건 감독의 숙제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의 숙제가 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상징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로 선명해진다.
그 선명한 상징은 그런데, 놀랍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선명해지면 선명해질수록 다시 모호해진다.
이건 이 영화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한계다.
이하 좀더 살펴본다.
1. 슬픈 오리발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온갖 슬픈 오리들을 위한 송가다.
수면 위에 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그 오리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우아한 세계'라면, 그 수면 아래서 발버둥치는 그 슬픈 오리발은 그 소망이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쳐야 하는 그, 혹은 그를 둘러싼 세계의 '추악한 모습'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 오리들(송강호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공덕을 기리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송가는 슬픈 송가다.
이 영화는, 그 외피는 조폭영화지만, 실은 전혀 조폭영화가 아니다.
'깡패'로 등장했지만, 실은 그 깡패 혹은 그 돈벌어오는 기계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온갖 남자들을 대유하는 의미에서의 '깡패'일 뿐이다. 그는 아내에게마저 이해받지 못하고, 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마는 '한물 간' 가장을 표상할 뿐이다. 그는 이제 자기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들로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별별 더러운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멀어지고 있다. 그 모습이 영화 내내 송강호를 통해 재현되고, 형상화한다.
그 송강호가 참다 못해 말한다.
"넌 다 알잖아? 니가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
2. 송강호 vs 송강호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 송강호를 통해 형상화된 그 모든 이미지들, 특히 우리시대의 슬픈 아버지의 초상에 과도한 연민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 송강호라는 미덕과 송강호라는 악덕은 서로 부딪혀 의미있는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혹은 그 긴장의 깊이가 깊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불쌍한) 송강호는 (나쁜) 송강호를 지워버린다. 이제 관객들은 그 (나쁜) 송강호가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며, 실제로 그가 나쁜 짓을 한다고 해도 그를 용서할거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버림받음으로써, 실제적으론, 관객들을 통해 구원받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건 깊은 아쉬움이다. 송강호와 송강호는 좀더 싸웠어야 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송강호를 둘러싼 관계들은 좀더 깊이 고민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진 못한다. 영화는 그 슬픈 위선들, 슬픈 가식과 속물근성, 그리고 지랄 같은 '우아함'을 까발리기 직전에 멈추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는 드라마 속에서 구원받지만, 관객에게 그 두 개의 송강호를 매개로 한 적극적인 개입을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이제 관객들은 (불쌍한) 송강호에게 감정이입하고, 그를 슬프게, 혹은 눈물어린 웃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의 모든 열려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의 감상적 자기고백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영화는 정말 심각한 정치드라마, 혹은 우리시대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사회학적 깊이를 가질 수 있는 영화였지만, 결국은 감상적인 휴머니즘에 이끌려 멈춰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 배우의 역량이 어떻게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송강호의 연기를 이토록 만끽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이제 송강호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너리즘에 조금씩 불만을 표하는 예민한 관객들도 생겨나겠지만. : )
3. 송강호 아닌 인물들
송강호 아닌 인물들은 다소간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이 좀더 깊이있게, 좀더 입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송강호의 깊이가 좀더 깊게 울릴 수 있었을텐데, 송강호를 위한 영화를 '작정'하고 찍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크게 아쉽다.
연기는 대체로 무난하다.
"다시 신인이 된 마음으로"(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 ^) 연기에 임했다는 박지영(송강호의 아내)은 강한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론 좀 아쉽다). 김소은(딸역)은 다소간 스테레오타입이라서, 연기력을 발휘할 이렇다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오달수는 전형적인 오달수표 연기력을 여전히 뽐낸다.
4.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은 '공각기동대'의 음악을 맡았던 칸노 요코(Kanno Yoko)가 맡았다.
그녀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중에서 유명작만 추려보니)은 다음과 같다.
불량 공주 모모코(Kamikaze Girls 2004)
공각기동대 - 시리즈(Ghost In The Shell: Stand Alone Complex 2002)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Cowboy Bebop; 天國の扉 1998, 2001)
로도스도 전기 - 시리즈(Record Of Lodoss War: Chronicles Of The Heroic Knight 1998)
메모리즈(Memories 1996)
이 정도면 영화음악에 관한 한 굉장한 실력파라고 생각되는데, [우아한 세계]의 음악도, 나로선, 꽤 훌륭했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1/2
p.s.
덧. 글 제목을 [송강호 vs 송강호]로 바꿉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