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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베일은 나가리 : [T4 : 미래전쟁의 시작] 프리뷰

2009. 5. 26. 08:15  |   프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 안내
이 글은 스포일러 (전혀, 민감한 독자라도 전혀) 없습니다.
개략적인 액션과 내러티브, 캐릭터간 상관관계와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간략히 서술합니다.


[터미테이터 4 :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감독 : 맥지. McG) (미국, 영국, 독일)
T4로 그래도 가장 재미를 볼 것 같은 세 명의 배우들 가운데 두 명(좌 : 안톤 옐친, 우 : 샘 워싱턴)
물론 가장 손해(?)볼 것 같은 배우는 크리스찬 베일이다.



며칠 전에 [터미테이터 4 :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이하 'T4')를 봤다. 간단한 프리뷰.


1. 공격적인 액션 vs. 식상한, 본듯한 내러티브
깜짝 놀랄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식상한 수준도 아닌, 꽤 성공적인 액션의 쾌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나 다양한 용도와 모습의 '기계들'은 흥미로운 영화적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이건 '장난감 장사'에서 재미 좀 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T4]를 철학하기 위해, 삶의 사유를 확장하기 위해 보러갈 관객들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시각적 쾌감을 주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다만 철학이나 민감한 사유의 촉감을 기대하는 것은 과하겠으나,  누구나 기대하는 '이야기'(드라마)라는 차원에서는 [T4]는 다소 실망스럽다. [T3]보다는 만족감을 주겠지만, [T1]의 혁신적인 비전이나 [T2]의 드라마틱하게 짜여진 액션의 속도와 쾌감에는 현저히 밀린다.

그러니 장난감 놀이도 썩 훌륭하고, 개개 액션의 완성도도 꽤 훌륭하지만, 액션들의 전체적인 구성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초반에 너무 진을 뺀다.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 없이 너무 달린다. 첫 감옥 장면 같은 심리적 긴장 요소(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미지-액션의 물리적인 이완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 물리적인 이미지-액션의 쾌감과 공격성은 대단하지만, 영화의 표피적인 내러티브는 좀 심심한 수준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이미지-액션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심리적인 긴장과 쾌감을 증폭시켜주는 내재적인 내러티브(심리적 내러티브)를 함께 끌고가지는 못한다. 이 부분에서 [T4]는 명백하게 실패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액션의 긴장감이 드라마의 긴장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건 이토록 화려한 액션영화인 [T4]의 가장 아쉬운 부분들 가운데 하나이며, 액션영화로서 결정적인 흠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역시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T2]의 제임스 카메론이 그리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T4]는 도입 - 전개 - 절정 - 결론의 과정이 정반대로 설계된 영화같다. 물론  관객들의 심리적인 기대 반응은 대체로 그 반대의 관극틀에 익숙해져 있고, 이것이 당연히 자연스럽다. 그래서 [T4]는 후반으로 갈수록 맥이 빠진다. 뭔가 식상하게 예상 가능하다. [T4]에서 구원(salvation. 영화의 원제목)은 도식화된 내러티브로 인해 어떤 감동도 전해주지 못한다.

2. 드라마 - 비장의 무기 : 마커스는 [T4]의 가능성이자 한계.
이 영화에는 드라마가 없다. 그 드라마는 막 생기려다가 사라진다.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내적 인과율이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혹은 그런 인과율이 도식성에 의해 파괴되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마커스라는 흥미로운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에 대한 흥미는 도식적인 상투형의 틀에 갇혀 반감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쉽게 말해 용두사미되시겠다.

'마커스'(샘 워싱턴. Sam Worthington. 1976)라는 인물은 [T4]에 그나마 내러티브에 긴장과 입체성을 부여하지만, 마커스와 마커스를 둘러싼 인물에 대한 식상한 수준의 도식적 장치들이 인물에 실존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채로 좌절하고 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T4]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긴 하다. 'IMDb' '스타미터 STARmeter' 에서도 출연배우들 가운데 가장 높은 Up200%의 상종가를 치고 있다). 마커스는 그 자신의 영화적 형상화에 실패함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 Christian Bale. 1974)에게도 부정적이 영향을 미친다. 함께 긴장을 증폭시키지 못하고, 둘이 함께 망가지는 형국이다.

이런 갈등적인 긴장관계라는 차원에서 당연히 [배트맨 : 다크나이트]가 떠오른다. [T4]의 마커스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마찬가지로 크리스찬 베일의 존재감을 '나가리'시키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액션의 공간적 배경도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기존 영화의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느낌이 강하다(T2의 특정 장면, T3의 시가전 액션신들은 노골적인 수준으로 빌려오고, '매트릭스'풍의 철학적 아리까리즘은 있어보이기 위해 빌려오고 있는 것 같다).

3. 크리스찬 베일은 어찌하여 나가리가 되었나...
나 는 크리스찬 베일을 꽤 좋아한다. 가령 그가 [머시니스트]에서 보여준 연기는 로버트 드 니로가 '성난 황소'에서 보여준 요술 다이어트와 맞먹는 수준의 감동을 준다. 물론 그 연기까지를 드 니로와 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친구는 정말 성실하군" 이런 정도의 감상은 충분히 갖게 해준다.

그렇게 열심히 연기하는 크리스찬 베일이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연기력을 늘 한결같이 보여주는 크리스찬 베일이지만, [배트맨 : 다크나이트]에 이어서 이번 [T4]에서도 자신의 영화적 존재감을 확보하는데 실패한다. 주인공은 주인공인데, 재미없이 뻔한 주인공이다. '마커스'란 인물의 등장은 마치 [배트맨 :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크리스찬 베일의 존재감에 극히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마커스란 인물에 내재된 갈등적 요소들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존 코너'를 식상할 만큼 평면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아쉬운 점은 [배트맨 : 다크나이트]에서는 조커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나마 성공하고 있지만, 이번 [T4]에서는 마커스도 어중간하게 멈춰서고 있다는 점이 다. 그리고 마커스와 존 코너, 그 둘 모두를 멈추게 하는 건 어떤 도전적인 질문도 없는, 어떤 존재론적 근심도 발견하기 어려운 액션영화의 관습적인 도식성이다. 그 도식성은 [T3]에서 "나는 기계다"를 외치는 아놀드의 민망뻘쭘함을 떠올릴만큼 촌스런 도식성이면서, 이게 무슨 [미녀삼총사]같은 섹시하기만 한 찌질 연작 버전으로 환골탈퇴하는 건 아닌가 우려하게 하는 노골적인 도식성이다.

4. 빛나는 조연, 안톤 옐친(Anton Yelchin. 1989).
' 카일 리스' 역을 소화하고 있는 약관의 안톤 옐친은 [알파독] 이후로 그야말로 '잘 나가는' 헐리웃의 무서운 아이일텐데, 이 젊은 친구는 [T4]에서도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극중 비중이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그리고 각본의 한계 역시 맹백하지만, 이런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도 이 젊은 친구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족한 연기를 펼친다. 조만간 수퍼스타급으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5. 헬레나 본헴 카터(Helena Bonham Carter. 1966)는 초큼 실망스럽다.
나 는 본헴 카터가 등장하는 영화는 무조건 기대 점수 플러스 1점이다. 그만큼 본헴 카터의 필모그래피는 흥미롭다. 내가 팀 버튼을 꽤 좋아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팀 버튼 마눌). 그런데 이번엔 좀 아쉽다. 본헴 카터가 연기한 '닥터 시레나'라는 인물은 마커스라는 문제적 인물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였다. 초반에 그토록 기대하게 만들더니, 편집에서 잘린 건지, 아니면 시나리오가 워낙에 개판이라서 이렇게 병맛이 된건지 헷갈리지만, 그녀의 영화속 캐릭터는 [매트릭스]의 '오라클' 짝퉁 버전이 아닐까 싶은 아리까리함과 코믹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건 뭐 아예 등장하지 않느니만 못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6.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 ^ (Bryce Dallas Howard. 1981) : 지못미..ㅠ.ㅜ;
살 이 찐건지 어쩐건지 인상 자체가 좀 이상하게 변한 것 같다. 임신설정이라서 그런가? 개인적으론 이상형에 속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다. 샤말란의 [빌리지]와 [레이디 인 더 워터]에서는 정말 반해버렸다. 샤말란이 꿈꾸는 구원의 여성형을 대표하는 샤말란의 페르소나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했던 배우다. 개인적으론 [빌리지]와 [레이디 인 더 워터] 두 작품 모두 샤말란의 자뻑만을 빼면 꽤 좋아하는 영화고...  그런데 이번엔 [T4]에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스테레오타입의 캐릭터를 그저 그렇게 연기한다. [스파이더맨3]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재 동시 개봉중인 아버지 영화([천사와 악마]의 론 하워드가 그녀의 부친)에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제목만으로 본다면 [천사와 악마](난 이 영화 아직 보지 못해서리..;;;)에 출연하는게 훨 어울려보이는데 말이쥐.

7. 문 블러드굿(Moon Bloodgood. 1975) : 유일한 로맨스
왠지 친근한 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살펴보니 엄마가 한국인이란다. [T4]에서 그래도 꽤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캐릭터라는 한계 때문에 스테레오타입에 머물고 만다. 그래도 꽤 인상적인 캐릭터들 가운데 한명이긴 하다(현재 IMDb '스타미터'에서 이번 주 Up198%라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만약 '너 왜 그랬니?' 이렇게 가상으로 질문을 하면 문 블러드굿(이름 참 독특하다)이 연기한 '블레어'는 '영화 속 설정이니까!' 이렇게 대답할 것만 같다.


8. 마이클 아이언사이드(Michael Ironside. 1950) : 저항군 사령관 아저씨
어릴 적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V](1984)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기억하지 못할 친구들이 더 많겠고나... 덧. 링크를 클릭하면 ABC에서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 우연히도 글을 쓴 뒤에 알게되었다능.. ) 거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는 [T4]에서는 좀 뻔한 연할이다. 그래도 참 반가웠다능. [머시니스트](2004)에서도 크리스찬 베일과 공연한 바 있다.

9.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 1939)
뭔 가 있어 보이는 포스를 풍기는 할머니 역할인데... 잠깐이긴 하지만 인상적이긴 하다. 그런데 비중이 너무 작고, 소리소문 없이 지워져 버려서... 뭔가 더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겠다. 에미상 여우조연상(웜 스프링스. 2005)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성격파 배우라고 한다.

10. 제이다그레이스 (Jadagrace. ?)
'스타'라는 마스코트 역할로 등장.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고, 뭐 그냥 귀여운 꼬마 역할이랄까... 과묵한 설정인지 벙어리 설정인건지 좀 헷갈린다.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진지해지면 손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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