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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스스로를 사유하다 - [록키 발보아] 프리뷰

2007. 2. 14. 22:16  |   프리뷰  |   키노씨

#. 이 글은 프리뷰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스포일러와는 상관없습니다. 이 글은 짧은 글입니다.



 

 
록키 발보아 (Rocky Balboa, 2006) 
미국. 102 분. 개봉 2007.02.14
실베스터 스탤론 (Sylvester Stallone)





록키, 스스로를 사유하다
- [록키 발보아] 프리뷰




0.
[록키1]는 '위대한' 영화다.
그건 [람보1]이 '위대한' 영화인 것처럼, 혹은 [스타워즈]가 위대한 영화인 것처럼, 그렇게 위대하다.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가 '훌륭한' 영화인 것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록키1]과 [람보1]은 위대하다. 이 위대한 영화(혹은 위대한 캐릭터)들은 상처받은 이민자의 정서를, 그리고 소외받은 월남전의 기억과 풍경을, 가장 매력적인 드라마 / 액션으로 재현했다. 이 영화들은 한 시대의 상처와 희망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상업영화의 걸작들이다.

하지만 그 영광 이후, 스탤론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 [록키]시리즈와 [람보]시리즈는 미국 패권주의의 '판타지 오락물'로 스스로 환골탈태해서, 자기가 태어난 존재근거를 망각하고, '불쌍한 아시아'를 구원하는 오만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을, 이분법적 냉전 사고방식의 야만을, 스스로 실천했다. 스탤론은 '도전자'가 아니라, 이제 '챔피언'이 된 자신을 나르시즘에 빠져 만끽했다. 그 [록키]와 [람보]시리즈는 레이건 시대의 패권주의와 제국적 욕망을 그대로 상징한다.


1.
그 스탤론이, 한물 간 과거의 액션 영웅이 [록키 발보아]로, 기/적/처/럼, 돌아왔다.
마치 자신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도 되는 것처럼, 이제 스탤론은 스스로의 영화적 역사를, 자기 존재의 흔적들을 사유한다. [록키 발보아]는, 비록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보여준 그 비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그 사유와 고민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그 미덕은 다소간 상투적인 '도전정신'이다. 그건 [록키 발보아]의 사유가 '상식주의'와 '미국적 관습의 전통' 안에 존재함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 그 두 개의 영화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장르 영화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스스로가 거대한 상징으로 존재했던 도그마화된 페르소나를 해체하면서, 스스로를 사유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서부영화의 관습과 상징들을 해체하고, 스스로가 그저 '실존'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고백하고 있다면, 그 깊은 고백으로 사유의 그 밑없는 심연을 보여줬다면, 스탤론은 다소간 감상주의에 빠져서(하지만 진심을 다해!) 스스로가 이루려고 했던 소망을 다시 여기서 재현하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그 고민과 사유, 반성의 풍경은 같지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에 가깝다.


2.
[록키 발보아]는 스스로 영광을 쟁취하는 영화이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스스로 영광을 반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깊은 존경을 얻는 영화이다.

[록키 발보아]의 아쉬움은 (그 아쉬움은 또 다른 관객에게는 그 만큼의 매력일 수도 있을텐데) 전반부의 내러티브가 반성적 사유와 낭만적 기억 속에서 놀랄만한 영화적 비전으로 나아갈 만한 토양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내러티브는 그 비옥한 토양에서 과거의 영광을 나르시즘적 시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키 발보아]는 [록키1]의 영광을, 스탤론의 온 마음을 다해, 지금 여기서 재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록키1]의 관객이라면, 그 추억을 자신의 내밀한 영화적 기억의 창고 한 켠에 보존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록키 발보아]를 거절하기란 몹시 어려울 것이다.



p.s.
난 이 영화 보면서 좀 울었다.



#. 재미삼아 별점

* 총평점 : ★★★★

* 영화적 비전 : ★★★★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 좋은 잔상 : 록키답지 않은 록키의 모습들.
* 나쁜 잔상 : 성급한 화해를 보여주는 장면들. 흑인 챔피언의 실존적 고민에 대한 관심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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