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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권력 - [왕의 남자]

2007. 2. 26. 07:59  |   리뷰  |   키노씨

#.
짧은 리뷰입니다.
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불안을 염려하시는 분들은 피해주세요. : )



1.
모든 예술이 그런 것처럼 영화도 비유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피아노](제인 캠피언)에서 제국주의 정치경제학(정성일)을 읽어내기도 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연애나 여성주의(유지나)를 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_-; , 언어와 권력과의 함수관계에 주목하기도 한다.

[왕의 남자]도 나는 마찬가지다.
해석은 무한하게 자유니까.
그 해석을 통해 영화는 풍성해진다.
그저 감독의 정답만을 찾아내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쓴다면 그건 정말 따분한 일일거다.


 왕의 남자.jpg
[미디어, 혹은 연극]
왕의 남자 (爾: King And The Clown, 2005)  
이준익. 119 분. 개봉 2005.12.29


2.
각설하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
이게 나만의 해석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어느 영화저널에서 이미 한 이야기인지는 나는 모른다. 그런 불안이 있는거다. 나는 프로도 아닌데, 자존심은 쎄다. -_-; 누가 이미 한 이야기를 그걸 좀더 잘 할 자신도 없으면서 하는 건 싫으니까. 그러니 나는 이 짧은 나의 이야기가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이길 바란다. 물론 영화를 가장 먼저 보고 '선수'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나는 너무 늦게 이 영화를 본 것이다.


3.
각설하고, 이건 설명문에 가까운 영화다.
그게 나의 감상이다. 그건 그런데 [동성애]를 설명하는 영화는 물론 아니고, [미디어와 권력]의 함수관계, 그 공생관계 혹은 그 역학을 설명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정말 노골적으로 [미디어와 권력]의 함수관계를 마치 친절한 설명문을 읽는 것처럼 딱딱 아귀를 맞춰서 풀어내고 있다. 정말 그렇다.


4.
의미심장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각본을 주는거다.
그건 권력이 작동하는 설계도와 같다. 그걸 집행하는 건 왕의 최측근이다. 그러니까 내시의 왕, 장항선이 그걸 한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것, 그건 광대(미디어)다. 온갖 현란한 춤과 안무와 재담으로 그 설계도를 실현한다.

아주 노골적인 장면은 또 있다. 감우성이 그런다.
다들 왕이야기 하니까, 우리도 왕이야기 하자. 그게 여론이다. 그런데 그런 밑바닥의 여론이 어떻게 정략적으로 다시 각색될 수 있는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민초들로부터 출발한 '여론'은 그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며, 영화에서 더 이상 민초들은 보여지지도 않는다. 이건 이제 권력의 상층부에 존재하는 '권력'의 작용과 그 메카니즘에 관한 영화인 거다.


5.
감우성 눈멀다.
이것도 꽤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디어 그 자체이고, 미디어 콘텐츠 그 자체이다. 물론 소스는 왕이고, 왕을 둘러싼 권력이다. 그런데 그는 이제 눈 멀었다.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는 말한다. "이제야 정말 장님 역할 할 수 있게 되었는데.. "

그건 역설이다.
감우성이라는 미디어의 상징은 이제 정말 눈이 감겨서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까.


6.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그다지 나로선 강렬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그건 그저 흥행적인 요소들을 노린 꼼수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석되어도 좋고, 그게 논란이 되어 이야기되면 더 좋고. 그러니까 감독은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표피의 이미지들이 여론을 얻고, 인구에 회자되면 그건 그 자체로 상품성을 갖게 되니까. 나로선 솔직히 왜 동성애 코드가 이 영화를 설명하는, 비평하는 중심적인 주제가 되어야 하는지, 굉장히 의아하다.

이 영화는 권력과 미디어,
그 작용과 그 작용의 최종적인 귀결,
반란이거나 복종이거나, 를 슬프게 보여주고 있다.

광대는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는 순간, 죽어야 한다.
미디어가 진실을 포기하는 순간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건 정말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
* 대중 친화도 : ★★★★½

* 비주얼 : ★★★★
* 내러티브 : ★★★★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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