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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관습의 파괴와 수용 - [매치 포인트] 우디앨런의 경우

2007. 4. 11. 02:38  |   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합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놓친 독자들 꽤나 많으실 것 같네요. 이 글은 역시나 예전에 썼던 글인데요. 사정상 여기로 옮겨오는 겁니다. 공개 하지만 발행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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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 포인트 (Match Point, 2005) 
미국, 영국, 룩셈부르크.  밝은 느와르 멜러 드라마. 123 분. 개봉 2006.04.13

우디 알렌 (Woody Allen)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Jonathan Rhys Meyers :  크리스 윌튼 역
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  노라 라이스 역
브라이언 콕스 Brian Cox :  알렉 휴윗 역
매튜 굿 Matthew Goode :  톰 휴윗 역
에밀리 모티머 Emily Mortimer :  크로 휴윗 윌튼 역






매치 포인트

- 장르적 관습의 파괴와 수용 ; 우디 앨런의 경우


 


0.
난 솔직히 우디앨런에 대해선 반신반의했다.


굉장한 평가를 '줄곧' 받아오긴 했지만, 솔직히 우디 앨런식의 코미디가 갖는 그 싸늘함이라고 해야 하나, 지적인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좀 너무 자의식이 강한 작가라서 맘에 들땐 굉장히 좋지만, 맘에 들지 않을땐 "뭐지? 흥~!" 이렇게 되기도 하는거다. 물론 모르니까 이렇게 지껄이는거 겠지만. 


그런데 난 [매치 포인트]는 강추다.
정말 맘에 든다.
이 영화를 통해 난 우디앨런은 정말 '대가'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확실히, 그는 대가다.



1. 장르적 관습의 파괴와 그 현대적인 수용

이 영화는 느와르다. 그런데 형용모순이지만, 이건 '밝은' 느와르다(noir. 다 알겠지만서도 불어로 '검정' -_-). 그러니까 형사가 등장하는 느와르는 아니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태양은 가득히] 혹은 그 리메이크인 [리플리]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밝고, 화사한 느와르다. 전체적인 톤이 그렇다. 그러니까 이건 장르적 관습을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그 파괴는 의도적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굉장히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영화적 관습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무엇을 나는 전달하고 싶은가가 그 관습보다 훨씬 중요하니까.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그 표현 형식은 항상 메시지와 서로 싸우면서,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관계다. 그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좀더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건 육체와 영혼의 관계니까. 육체가 없다면, 영혼은 어디에 깃든단 말인가?


쉽게 위선적인 상류계층의 도덕적 타락이나 그 물적 토대의 비윤리성, 뭐, 이런거 상상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영화는 그런 유치한 주제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없다.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 그 중에서도 좀더 특정하자면 영국 상류층의 그 교양으로 똘똘 뭉친 세계의 하부구조들, 그 교양의 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의 물적 구조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보여주고 있다기 보다는 그 성찰을 기본전제로 깔고 있는 영화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우디 앨런의 시니컬하면서 코믹한 그 장기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성숙한 관점을 유지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내 개인적인 감수성으론 이 정도의 사회적인 관점, 이런 정도의 냉정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감독은 '켄 로치'(특히 이 영화의 감수성을 [레이닝 스톤]의 감수성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정도다.



2. [죄와 벌]


주인공이 읽는 소설은 도스트예프스키다. 그리고 우디 앨런은 도스트예프스키의 소망이, 그 최소한의 메시지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다. 필름 2.0의 정지연씨는 그게 상류사회에 접근하는 문화적 코드로 수단화되고 있을 뿐이라고 보고 있는데(인터넷에서 제대로 읽은 건 필름 2.0 정지연씨의 글 하나뿐이다, 그리고 네티즌 짧은 소감 몇 개랑. 정지연씨 글은 좋긴 좋은데, 쓸만한 소리는 거의 망라적으로 다 썼다, 너무 망라적이라 스포일러가 꽤 많다. 물론 대충 속독해서.. -_-;  내가 너무 게으르고, 그 글이 너무 길다..-_- ), 나는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이건 라스꼴리니코프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저 단순히 상류사회로 '접속'하기 위한 문화적인 패스워드만으로 도스트예프스키가 등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거다. 여기에는 줄거리의 겹침도 있고(노파), 신분상승의 욕망도 있고, 무엇보다 '물욕'에 관한, 더더군다나 '우연'에 관한 심리적인 보고서가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스포일러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그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정말 이름 참 특이하다. 특히 꼴리니 부분 -_-. 농담이다)가 현대, 그리고 영국의 상류사회에 등장한다는 설정 자체가 나에게는 참 '고전적으로다가' 신선했다. 이런 구태의연한 시도는 정말 '대가'들이나 할 수 있는 구태의연함인거다. 이를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의 대가 말이다.


그 현대 영국, 런던에 등장한 이방인 라스꼴리니코프의 욕망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 라스꼴리니코프는 어떻게 타락할 수 밖에 없는가? 그런데 그 욕망은 얼마나 쉽게도 '우연'적인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가?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결정적인 질문은 그 욕망과 타락은 어떻게 '가뿐하게' 극복되는가, 그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현대소비사회의 필연인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공모자인 것이며, 내심 그 라스꼴리니코프의 위대한 범죄를 즐기고 있다. 물론 아주 타락한 방식으로, 소망은 없이, 그저 욕망만이 남은 채로 말이다. 그건 정말 섬뜩하다. 그런데 그걸 코믹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우리는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유머가 영화 속에 간간히 등장하면서, 우리를 고문한다. ("아, 이제야 알았어~!"를 외치는 그 형사!).  



3.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 이 넘이 주인공이다.
난 솔직히 [벨벳 골드마인]에서 이렇게 섹시한 '녀석'도 다 있군, 이랬다. 그런데 여기선 야심넘치는 테니스 강사로 등장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는 축국코치로 등장하는데, 테니스에 축구에.. -_-; 다재다능하구만. 굉장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지만, 영화의 가장 심각하고, 동시에 코믹한 상황(스포일러라서 말은 못하겠지만.. )에서의 그 서툰 '조립'은 인상적이다. 정말 내가 다 심장이 콩콩 뛰더라.


그리고 기본적으로 마스크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크게 대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이번에 알았는데, 아일랜드 태생이라고 나오네. 실제로 영화속에서도 극중인물이 아일랜드 태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스칼렛 요한슨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 콜로라도에서 온 걸로 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가장 훌륭한 연기는 이안 감독의 [라이드 위드 데블](강추~!)에서의 악당 연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4. 스칼렛 요한슨 - 헐리웃 스타 아이콘의 해석
왜 스칼렛 요한슨이 등장한 걸까? 그건 참 묘한 느낌이다. 우디 앨런은 종종 헐리웃의 굉장한 신성들을 등장시킨다. 이를테면 [에브리원 세즈 알럽유]에서, 나로선 정말 뜬금없었던, 줄리아 로버츠를 등장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뭐, 흥행해야 하니까 등장시킨 것도 같고, 그게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일거라고 난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런 황당무계한 포스터의 광고문구가 새겨질 수도 있는거다. 뭐, 이해하지만, 그 광고문구.. "당신도 그녀를 탐내는가"는 좀 너무 코믹하게 썰렁하고,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난 솔직히 스칼렛 요한슨이 그다지 이쁜지,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이 영화를 보니 참 이쁘다.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다만 [사랑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나에겐 다소 지루했던, 그 영화 속에서의 선입견이 작용해서 그런지, 혹은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그 어린 철부지 소녀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성숙한' 섹스심벌인양 연기하고, 그렇게 극중에서도 묘사되는게, 물론 자연스럽지만, 한편으론.. 뭐, 그렇게까지.. 이런 마음이 없지 않다.



5. 브라이언 콕스
[X맨](물론 우리나라 티브이 X맨은 절대 아니고. 왜 이런 쓸데 없이 웃기지도 않은 썰렁한 멘트를 내가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_-)에서 악당 군인으로 나왔던 그 아저씨다. 그리고 [본 아이덴티티]에서도 악당 비스무리로 나온다.


우디 앨런의 엔드 크레딧은 좀 특이해서, 이상한 이름들이 굉장히 앞줄에 나오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 같다. 내 보기엔 이 아저씨는 그다지 비중이 높은 역할이 아니다. 그런데 굉장히 먼저 나오네. -_-. 암튼 난 미국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영국아저씨다. 게다가 로얄세익스피어극단 단원에가다, 2002년에는  민간인 최고 명예인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 작위를 받았단다. 그게 뭐하는 작위인지는 난 물론 모른다.



6. 에밀리 모티어 - 부잣집 딸
난 이런 이미지가 참 좋다. -_- 착하게 생긴데다가 장난꾸러기 같고, 그러니까 약간 보이시하면서도 다소간 해맑은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좀 심심한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영화 보면서도 참 귀엽군.. 이러면서 난 봤다. [엘리자베스]에도 나온다. 분명히 그 [엘리자베스] 말고 다른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그 영화가 뭔지 검색해도 알 수가 없다. 내 기억이 잘못된건가 싶기도 하고.. 암튼, 참 착하게 생긴 배우다. 이건 대개의 경우엔 '악평'이겠지만, 난 호감의 의미로 사용한거다.


7. 퀴즈 - Du rififi chez les hommes

이거 뭔가?

줄 다신의 [Du rififi chez les hommes] 오디오 클립이 이 영화에는 사용되는데, 난 도무지 [Rififi]가 해석이 잘 되지 않아서.. 누가 좀 알면 해석좀 부탁한다.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고, 구글 하면 나올 것 같은데, 영어난독증이라서.. 그거 찾기가 좀 짜증난다. 부탁드린다. 무슨 지명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오디오 클립이 찌지직 거리는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인지는 난 모르겠다. 이 글에 탑재하는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이 영화에 삽입된 [남 몰래 흘리는 눈물](지지직거리는)은 아니다.
1955년 깐느에서 미장센상을 받았다네.. 그 땐 팜므도르(그랑프리) 대신에 이런 상도 줬다보다.  



8.
이건 최소한 수작이고, 보기에 따라선, 그러니까 식상한 장르영화에 정말 지겨워했던 관객이라면 최고일 수도 있는 작품이다. 너무 대박나는 영화만 찾지 말고, 이런 영화도 가끔씩 봐주면 좋다. 물론.. 책임은 못진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1/2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1/2
* 내러티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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