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21

영화 TV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

욕망과 정치, 그리고 상징적 절망 - [돌이킬 수 없는] (2002)

2007.10.22 12:04  |   프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 없습니다. 예전 글 추고한 글입니다.


0. 욕망의 문제를 영화와의 관계 속에서 질문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나에게 영화를 달라. 그러면 세계를 공산화시키겠다.”라고 레닌은 말한다. 그와는 정반대의 정치적 함의로서 푸코는 “보수반동의 기억장치”라고 말한다. 지식과 권력과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영화. 그 함정은 단순하다.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욕망이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아주 대담하게 우리의 욕망을 붙잡는다. 그것은 미술이 그렇듯이 시각을 통해서 우리의 욕망으로 접근한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화는 이미지-액션 그 자체의 시각적 쾌감을 통해 우리의 감각들과 직접적으로 만난다. 우리는 그 선택을 피할 수 없다.


0-1. 우리 안에 내재된 욕망의 회로들과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욕망은 서로 겹쳐지고, 어긋나고, 다시 만난다. 그것은 능동태인가, 수동태인가. 우리는 영화를 능동태로서 만날 수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수동태로서, 그 이미지-액션에 대해서 거절을 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렇지만 영화의 기술적 방식, 이를테면 롱-테이크은 그 희미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긴 하다. 이미지-액션이 재현되는 리듬과 속도의 조율을 통하여 어쩌면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 모든 이미지-액션의 폭주가 끝난 뒤에 남은 정지한, 희미하게 흐르는 잔상들이 우리에게 남을 뿐이다.

그 쾌락을 통해 우리가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마비되는 자의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그 시각적 쾌락의 폭주가 끝난 뒤의 여운을 그저 흘려보내고, 자신의 내부에 머물게만 하는 상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다시금 사고하고, 반추한다. 그 대화를 통해 영화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의 세계로 나아가고, 세계를 분석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가스파 노에, 2002)      
프랑스 / 비유적인 역사극 /  95 분  /  개봉 2003.04.04
        
모니카 벨루치(알렉스)
뱅상 카셀(마르쿠스)
알베르 뒤퐁텔(피에르)
필립 나혼(필립)



1. 나는 여기서 큐브릭의 영화들과 만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은 큐브릭의 비전을 좀더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가를 지금 확정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대담한 비전을 보여주며, 영화가 제시할 수 있는 철학과 정치와 욕망의 문제를 그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논쟁의 한복판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아이즈 와이드 셧]이 거장의 깊은 완숙함에서 우러나는 음울한 관조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은 논쟁적이며, 파괴적인 에너지로 가득찬 청년의 패기어린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뜬금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조금은 민망하게 거대한 진실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  [돌이킬 수 없는]은 의식의 봉합 없는 재현을, 탄생과 죽음과 욕망의 끝없는 순환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장면들은 하나의 거대한 원처럼 끊김 없이 흘러간다. 그것을 표현해내기 위해 이 영화는 다소 유치한 잔기술을 쓰고 있지만, 그 잔기술이 그저 단순한 잔기술이 아니라, 의식과 욕망과 정서와 정치와 순환의 재현을 위해서, 그것이 하나의 완전한 원형과 구(球)의 체현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흔들리며 이어지는 롱 테이크는 어느 순간 어둠 속으로 흘러가고, 그리고 다시 과거의 기억과 만난다. 그리고 그것이 종착하는 지점은 환한 빛의 순간들이며,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며, 우리의 탄생이라는 선험적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만나는 세계는 절망적인 묵시록의 세계이며, 모든 것이 시간의 원 속에서 파괴와 종말을 영원토록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보여주는 반복되는 자본주의 메카니즘의 완고함과 그 안에서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권력과 지식과 욕망의 문제를 우울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은 그 파괴의 순환을 격정적으로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그 둘 모두의 절망은 상징적인 절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그 상징적인 절망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절망을 깨뜨릴 수 있는 무기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비전 : ★★★★★
* 대중 친화도 : ★★★1/2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 장면 :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