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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Mrs. 로빈슨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본 영화 [졸업]

2007. 2. 13. 21:29  |   리뷰  |   키노씨

#. 이 글은 짧은 리뷰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 (꽤 많이) 있습니다.


1. 벤자민의 모험-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통과하기

[졸업]은 중층적 텍스트다. 그것은 한편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이면서,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제의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졸업]은 무엇보다도 욕망에 관한 기묘한 역학을 드러내고 있는 훌륭한 심리학 텍스트다. 그 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영화 [졸업]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심리적인 역학관계이다.


그 역학관계의 중심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벤자민이 있다. 벤자민에게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모험은 Mrs. 로빈슨(앤 밴 크로프트)과 그녀의 딸 일레인과의 모험이다. 그 모험은, 프로이트가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처럼, 벤자민이 어른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다. 여기서 외디푸스 콤플렉스 구조의 변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벤자민-Mrs. 로빈슨-일레인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은 벤자민의 탄생-퇴행-성장이라는 공식과 겹친다. 또한 그 공식은 대학-사회진출 前-사회진출 後, 아이-사춘기-어른의 공식에 다름 아니다.

 

마이크 니콜슨의 [졸업]은 공항에서 막 귀향하는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의 얼굴 클로즈-업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막 공항을 통과하려는 벤자민의 얼굴이 화면 가득 채워지고, 벤자민의 낯선 듯 불안한 얼굴 저 편에서 공항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그 안내방송의 목소리는 '금지'를 드러낸다.


“……하지 마시오” 라고 거듭 말하는 목소리는 근엄하다. 그리고 마치 엄마의 자궁에서 막 나온 듯 한 불안에 가득한 벤의 얼굴이 그 목소리와 겹쳐진다. 이것은 마치 영화 전체 이야기에 대한 복선인 것처럼 보인다. [졸업]은, 그 시작에서 이미, 지금부터 당신들이 보아야 할 이야기는 금지와 불안과 그것에 대한 통과제의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의 생일날. 벤자민은 엉뚱하게도 잠수복을 입고 등장한다. 벤자민은 문 밖으로 나서기를 망설인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재촉한다. 재촉이 다급해질수록 벤자민은 자신의 잠수복을 내던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잠수복'은 아버지의 기대와 벤자민에게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벤자민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입어야하는 사회의 틀을 상징한다. 그리고 벤자민은 수영장 속으로 빠진다.


벤자민이 자신의 몸을 빠뜨리는 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의 始原과 母性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런 이미지의 겹침이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벤자민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올라올 수 없게 하는 장면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사회의 억압적인 규칙과 그 틀을 상징한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이미지와 겹치면서, 그 반대편에 선 낯설고, 두려운 사회라는 이율배반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 안에서 벤자민은 망설인다. 벤자민은 대학에서 학교신문사 편집장을 거친 전도유망한 졸업생이며, 많은 기대의 시선들에 갇혀 있는 가엾은 ‘소년’이다. 그 기대의 시선이 드러내는 억압, 그것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가부장사회의 질서이다.


영화 속에서 그 아버지의 모습은 다양한 환유를 통해 드러난다. 그 주류적인 기성사회의 질서에 대한 상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은 교회 ‘액션’(교회에서 일레인을 구출해내는 벤자민의 ‘혈투’는 하나의 스펙터클이라고 할 만하다)장면이다. 이 장면들에서 벤자민은 교회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십자가라는 ‘劍’을 통해 그들을 무찔러낸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자물쇠 삼아 그들을 교회 속에 가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험이 끝나고 자신을 기다리는 ‘백마’(버스)에 올라타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이 된다. 그것은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다름 아니다.


그는 기성세대를 가둔 그 십자가가 결국은 자신을 가둘 것이 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며, 그리고 그 자신, 어른이 되어야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가부장제의 시작이며, 그것의 토대이다. [졸업]이 낭만적인 이야기이면서, [졸업]의 그토록 이해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을 예정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졸업]의 마지막 장면, 버스 뒷 자석에 앉은 벤자민의 얼굴 클로즈-업 장면은 도저히 악당들로부터 사랑을 쟁취한 기사의 표정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낯설음과 불안이 그 안에 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졸업]의 첫 장면과 겹쳐지면서, 영화는 벤자민의 불안에 가득한 표정으로 그 시작과 끝이 갇혀있는 구조가 된다.





졸업 (The Graduate, 1967)
미국. 105 분. 우리나라 개봉 1988.11.19
마이크 니콜스
 (Mike Nichols. 1931년 독일 베를린 출생)



2. 미스터리 Mrs. 로빈슨

마지막으로 살펴야 하는 것은 ‘미스터리’ Mrs. 로빈슨이다. Mrs. 로빈슨은 어떤 의미인가.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삼각형 구조, ‘자아-아버지의 권위-어머니로 향한 욕망’의 구조에서 그녀는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Mrs. 로빈슨은 벤자민의 욕망의 구조에서 어머니이면서, 아버지인 것이다. 그녀는 벤자민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자신의 욕망을 위해 벤자민을 선택하기도 한다.


Mrs. 로빈슨이 벤자민을 욕망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그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소년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Mrs. 로빈슨는 말한다. “여자 경험이 없지?”. 이 말에 벤자민은 발끈하고, 어른의 세상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 ‘유발된’ 욕망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욕망이다. 왜냐하면 더 커다란 모험이 벤자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의 욕망은 Mrs. 로빈슨에서 그녀의 딸인 일레인으로 전이(轉移)한다. 그것이 단순한 이전(移轉)이 아니라 전이(轉移)인 것은 욕망의 대상이 바뀌면서, 그 욕망의 성질 또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以前의 욕망은 기성사회의 억압이라는 생산물을 만들고, 새롭게 전이한 욕망은 그것에 대항하는 저항의 욕망이 된다. 즉 욕망이 전이하면서, 욕망의 전이를 전후한 욕망은 서로에게 대립하는 욕망이 된다. 前者는 기성세대의 질서라는 생산물을 만들어 벤자민을 금지하고, 억압하는 상징이 되고, 後者는 그것을 깨뜨리려는 저항의 욕망이 된다.


영화 속에서 Mrs. 로빈슨은 일레인에게 나아가는 벤자민의 욕망을 방해하고, 금지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삼각형 구조에서 어머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녀는 금지된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그것이 충족되면서, 이제는 아버지의 이름이 되어 벤자민에게 금지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벤자민의 욕망을 일으키지만, 벤자민은 그 욕망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서 욕망의 전이는 그녀를 벤자민의 적으로 만든다. 그녀는 무찔러야 하는 기성세대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제 벤자민은 더 이상 Mrs. 로빈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단 성취된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벤자민에게 Mrs. 로빈슨는 통과제의의 메타포가 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미묘한 이끌림의 정체는 기성사회의 억압이라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Mrs. 로빈슨는 이율배반 그 자체가 된다. 그렇지만, 과연 일레인은 벤자민의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3. 결어

여기서 우리는 다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간다. 일레인과 벤자민의 얼굴이 서로 번갈아 가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들의 표정은 불안과 기대의 낯선 경계에 있다. 벤자민은 애써 웃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억지스런 미소는 불안을 더욱 증폭하여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결국 우리는 벤자민과 똑같은 표정이 되어 불안하게 벤자민과 일레인을 바라본다. 그들이 결국 또 다른 Mr. 로빈슨과 Mrs. 로빈슨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을 애써 지우며..





#. 재미삼아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

* 대중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 연기 : ★★★★★
* 음악 :
★★★★★





 

꽤 오래전에 썼던 글 (99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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