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21

영화 TV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돕는 101가지 방법

2009. 4. 13. 16:37  |   단상들  |   키노씨

* 혹시라도 글이 길다 싶은(줄이고 줄인 글이지만) 독자는 4. 이하만 읽어도 족하다.

0.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지난 3월 31일 공식 해체되었단다(공식 해체 소식 자체를 비중있게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한편으론 부끄러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뭐 세상일이 그런거지. 내 앞가림 하기도 남은 거리가 42.195다.


1. 정명훈 vs. 목수정 이야기는 이제 나올만큼 나온 것 같다. 나도 관련글 쓴 적 있고, 이에 대한 6dgf의 의견도 블로그에 옮긴 바 있다. 아직도 정명훈과 목수정에게 붙잡혀 있는 건 좀 심하다. 이제는 정말 국립오페라 합창단을 이야기할 차례다.

2. 솔직히 그건 지루한 얘기다. 정명훈과 목수정에 관한 자극적이고, 섹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별별 더럽고, 유치한 감정까지 다 긁어내는 그 섹시하고, 병맛스럽게 현학적이며, 거지같은 난장판 논쟁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우리 삶처럼(아, '우리'가 불편한 독자들은 '내 삶처럼'으로 읽어주길) 지지리궁상인 그런 이야기, 비정규직 음악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물론 거기에서 재미의 요소를 끄집어내는 건 재능이겠으나.  

3.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더 얘기하자. (이 얘기 지겨운 사람은 생략 권장)
예의 논쟁도 좋고, 목수정 싸가지도 좋고, 정명훈 꼴보수도 좋고, 진보니 보수니, 연대니, 예술가와 대화하는 법이 니 다 좋다. 의견이 설득력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좋다. 목수정을 무슨 사이코패스나 새디스트로 모는 것도 보기 좋지 않지만, '진보와 연대'라는 수사가 무슨 대단한 훈장이라도 되는 양, '진보신당 지지자'인게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폼나는 악세사리인 것처럼 그러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렇다. 그렇게 소아병적이고, 자아도취적인 공격적 수사 남발하면, 그나마 있던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마저 날아가버릴 것 같다. 정말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런다. 진보가 그렇게 쉬운 거면 나라꼴이 이렇지는 않을거다. 언젠가 행인은 진보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 그런데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노동자"가 가지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적 수준을 도외시한다. [....]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조차도 우리의 한 일부이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진보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행인, 진보의 재구성  중에서) 


'정명박'이라는 임시필명을 사용하는 이는 '정명훈 vs. 목수정' 관련글들에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기곤 하는 것 같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봤고, 내 관련글에도 봤다.


이명박과 정명훈의 공통점은 마인드가 똑같다는 것이다!
이MB : 상위1% 국민을 위한 정치.
정MB : 상위1% 예술인을 위한 행위.
그리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찬성도 이명박과 똑같은 생각이다. (정명박, 이라는 임시필명)


쿨한 것 좋아하는 얼음집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는 상위 1% 진보를 위한 글쓰기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런 선민의식, 그렇게 혼자만 똑똑해서 다른 무식한 종자들은 입닥치는게 딱 좋다는 식으로 쓰는 그런 마인드로는, 그네들이 말하는 진보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진보' 역시 1%를  위한 것을 영영 넘지 못한다. 이건 내가 장담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 친구들에게 꽤 호감을 갖고 있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싶다.

좀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폼 안나더라도, 유치하고, 부족하더라도 뭔가 실천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거다. 나도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정명훈이 실망이네, 목수정이 고문관이네, 예의가 어쨌네, 위기관리가 어쩌네,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중요하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고민할 수 있고, 나와 너를, 그리고 관계와 사회를 성찰하는 재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주 의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이야기라는 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어떻게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도울 수 있을까, 이런 좀더 실질적이고, 좀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할 차례다.

3. 물론 답답하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스피커(담론권력)가 크지도 않고.. 쥐뿔 마음만 너무 멀리 달려가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을 쓰는 일이다. 문득 글이란 얼마나 위대하며, 또 얼마나 무력한가?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국립오페라합창단에 대해 글을 쓰는 일, 정명훈을 지지하던, 목수정을 옹호하던 그런 걸 다 떠나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일. 이 일들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정명훈이 당한 부당함에 대해 목수정을 비판하던, 아니면 사회적인 연대의식에 소홀한 정명훈을 비판하며 목수정을 옹호하던 간에,  대체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하는, 그네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대체로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명훈, 목수정은 이 쯤에서 그만 잊자. 언젠가 한영애가 노래한 것처럼 이제는 '어떻게'가 중요하다.

4. 몇 가지 제안
1) 모금
싸움에도 돈이 필요할테니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를 위해 모금을 하는 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일테다. 실은 이게 가장 확실하게 돕는 '자본주의식 방법'이긴 하다.

2)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 블로그
그런데 노조 홈페이지나 노조 블로그나 그런건 어디 있는거지?
합창단 노조 홈페이지나 뭐 그런 거 있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발견되지 않는다. 거리에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에서 노조의 입장을 홍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목수정이 자기 한몸 희생(?)해서 노이즈 마케팅도 해줬겠다, 멍석 제대로 깔려 있다. 티스토리 같은 곳에서 블로그 하나 만들어서 애드센스도 붙이고, 성금 마련 배너도 붙이고, 그러면 얼마나 좋나?


3) 블로거들이 알아서 도와준다. 만들기만 하시라.
혹 시라도 노조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 블로그' 만드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난다 긴다 하는 블로거들은 정말 천지 삐싸리일거다. 이글루스에서 '연대' 외치는 젊은 친구들도 앞장 서서 도울거고. 거리에서 시민들 상대로 호소하고, 문화부 건물 앞에서 피켓 들고 싸우는 것도 좋은데(지금은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인터넷 시대인가, 이런 것들도 좀 생각해주시라.

4) 거기에 '현장 취재' 좋아하는 다음 블로거뉴스도 있다.
다 음 블로거뉴스라는 유사 저널리즘 유통망에서도 자기들 한 짓이 있는데 외면하지야 않겠지. 정명훈 vs. 목수정 이슈 띄울 때는 좋아라 하다가 '국립오페라합창단 블로그에서 '그 날 그 날의 싸움'들을 '현장에서 스스로 취재해서' 기록하는데 모르쇠하면 정말 걔네들은 '진보삘 나는 선정주의'를 여타 트래픽 장사의 구색맞추기로 끼워넣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거다. 물론 다음 블로거뉴스에 블로기즘이나 저널리즘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좀 넌센스이긴 하지만... ;;


5) 메타블로그들이여 연대하라(ㅎㅎ).
이런 좋은 일에는 이벤트도 좋고, 삼벤트도 좋으니(썰렁. 안다. ㅡ.ㅡ; ) 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달라. 합창단노조 블로그 만들어지면 좀 배너도 올려주고(하다못해 피자헛 후원받는 블사조도 배너에서 띄어주는 판에), 블코 같은 곳에서는 블로거 인터뷰 같은 것도 좀 시도해보고... 미디어성을 강조하는 메타블로그들이라면 이런 참여적인 이슈들을 통해 블로거들에게 좀 확실히 어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6) 진보신당이나 레디앙 기타 등등
그냥 말로만 돕지 말고, 좀 뭐라도 제대로 지원을 하면 좋겠다. 이미 그 '실질적인 조력의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좀 알려주시라. 좀 알고 싶다.


7) 노조 블로그를 통해서 (유료 후원) 공연 같은 거 기획도 하고 좀 그래달라.
내 없는 돈 탈탈 털어서라도 그 공연 반드시 가서 문화생활 할 용의 있다. 피켓 들고 징징거리기(악의없는 표현이니 좀 이해해달라)나 도와줄 생각 쥐뿔도 없는 정명훈 등에 업고 노이즈 마케팅하는 방식으로는 솔직히 실효적인 호응을 얻어내기 어렵다고 본다. 뭔가 즐기는 싸움, 뭔가 보여주고,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그런 싸움을 해주시라.


101가지 방법들 가운데 이제 겨우 일곱 개 썼다.
나머지 94가지 방법들은 동료블로거들과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아참, 레오포드(leopord)가 기꺼이 동감을 표해준 제안이 하나 있다(물론 어떤 이가 비밀글로 남긴 것 같은데, 별 새로운 제안은 아니고), ' 블로거들이 자신이 관심있는 사건에 대해 끝까지, 아니 가급적 오래 오래 기억하고, 새로운 소식 있으면 생각하고, 짧게라도 한 줄 씩 쓰고... 그렇게 '메멘토 리스트'에 이 사건을 남겨두는 건.. 합창단노조를 돕는 가장 쉽고도, 블로거다운 방법이라고 본다. 레오폴드의 첫 번째 메멘토 리스트가 '합창단노조'다. 가급적 오래 오래,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관련 이슈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방법을 고민하고, 그 기억을 삶과 블로깅 속에서 내면화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합창단을 돕는 93가지 방법(단계)이 남아 있다.
어서 어서 채워주시라.

* 안내
이 글은 일절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글이다. 복사를 하건, 스크랩을 하건 전적으로 자유다. 상업적인 사이트에 올려도 상관없고, 변경과 수정도 맘대로 하시라. 물론 결정적으로 그럴 만한 (좋은) 글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겠으나... 좀 그래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관련글 및 팟캐스트
선동과 선동사이 : 정명훈 vs. 목수정
목수정 논란에 대한 대담 (미디어토크) : 입장차이가 너무 동어반복적으로 계속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지만, 역시나 입장차이가 생겨야 이야기하는 맛도 난다.


* 관련 추천글
6dfg, 정명훈 vs. 목수정 : 명예훼손 성부 판단

* 발아점
[시사 티켓] 정명훈 감독님, 기도하세요 (씨네21, 김용언)
위에 링크인용한 김용언의 짧은 글은 피상적 휴머니즘 가득한 감상적인 선동으로 평가할 수 밖에는 없겠다. 김용언은 목수정의 일방적인 주장(의 근거로 선별된 정명훈의 발언)을 토대로 정명훈을 조롱조로 훈계하는데, 이런 방식은 전형적인 조선일보 방식이 다. 말미 '브래스드 오프' 인용은 뭐랄까, 참 글 쉽게 쓴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그 휴머니즘에 나는 물론 기꺼이 공감하지만, 그 방법에 동의할 수는 없다. 그 방법, 태도는 결국 목적을 지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런 고민도 없는 상투적이고, 진보삘 나는 휴머니즘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씨네 짤막 칼럼을 통해서 소식도 듣고, 글도 써야지 했기에... 발아점으로 기록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생각없이 쉽게 쓰는 글에 대해선 찬성하기 어렵다. 김용언이 과연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고민을 갖고 있기는 한건지, 목수정의 글은 정말 제대로 읽긴 한건지 의문이다. 좀 많이 유감스런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