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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V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들

관음증에 대한 낭만적인 해석 - [디스터비아] 프리뷰

2007. 9. 5. 16:52  |   프리뷰  |   키노씨
#. 스포일러 불안을 고려합니다. 스포일러 (거의) 없습니다.


0. 전형성와 그 변주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스릴러물이다.
물론 이 전형성은 히치콕이 만든 영화적인 관습으로서의 위대한 전형성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영화는 히치콕의 '이창'의 신세대 리메이크 버전이다.  
그 전형적인 틀 안에서 영화는 몇몇 의미있는 변주들을 들려준다.

가장 의미있는, 아니 당연한, 아니 조금은 식상하게 뻔한 변주는 이 영화에 담긴 신세대 코드다. 요즘 가장 각광받는 아이돌로 부각한 '샤이아 라보프'의 매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녀펜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이 영화는 근심한다. 그리고 그 근심은 어느 정도는 효과적으로 영화 속에서 형상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귀엽고 깜찍한 소년소녀의 탐정놀이와 그들의 연애담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다른 사정들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1. 외디푸스 컴플렉스, 그리고 희생되는 어머니  

영화에서 라보프(케일)과 이웃집 사내의 적대감과 긴장감은 관음증과 더불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심리구도인 외디푸스 컴플렉스 구도를 반영한다. 다만 그 뿐이다. 이것 역시 식상할 정도로 뻔한 구조다. 이건 마치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운명적인 명령으로 주어진 것과 같은 느낌이다. 영화는 히치콕을 빌려오긴 했지만, 히치콕의 영화들이 담고 있는 중층적인 의미구조, 혹은 다채로운 상징들을 통한 형상화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주인공 소년을 부각시키기 위한 영화의 (상업적) 전략이었을테다.

그래서 캐리 앤 모스(줄리. 소년의 어머니)는 그 존재감이 희미하다못해 투명할 지경이다. 캐리 앤 모스라는 배우의 역량을 활용하지 못한 영화의 단순한 전략적 선택에 대해서는 깊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소년의 어머니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 그러니 소년을 위해, 그 소년에 의해 처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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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터비아 (Disturbia, D.J. 카루소, 2007)      
미국  |  청춘 로맨스. 스릴러  |  104 분  |  한국개봉 2007.08.30

샤이아 라보프 Shia LaBeouf    :  케일 역
사라 로머 Sarah Roemer    :  애슐리 역
캐리 앤 모스 Carrie-Anne Moss    :  줄리 역
데이빗 모즈 David Morse    :  미스터 터너 역
아론 유 Aaron Yoo    :  로니 역




2. 관음증에 대한 낭만적인 해석

영화의 가장 뛰어난 장면이라고 많은 관객들이 느낄 라보프(케일)가 로머(애슐리)에게 자신의 '관음 보고서'를 들려주는 장면은 탁월하다. 그 탁월함은 영화적인 비전이나 영화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고, 그저 낭만적으로 감동적이다, 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거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각예술이지만, 대사의 역할은 때로는 영화의 감각적인 이해를 풀어서 속삭이듯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도 하니까.

그 장면은 이 영화에 대해 소녀펜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동기를 제공하고 있을테다. 그리고 더불어 관음증이 부정적인 패턴에 고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나름의 해석론(?)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헐리웃 아이돌을 위한 영화이니만큼 그 관음증은 낭만적이어야 한다. ㅡㅡ;

이는 마치 시선과잉과 시선결핍에 대한 낭만적인 에세이처럼 읽힌다.



3. 주인공 소년의 한국인 친구 아론 유

라보프의 날라리(?) 단짝친구로 등장하는 한국계 배우 아론 유.

귀엽다.
단순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라보프의 구도에 철저히 종속되어 달리 평가할 만한 캐릭터의 의미를 발견하긴 쉽지 않다.
이 점 역시 아쉽다.
그런 점에서 사라 로머(애슐리)도 본질적으론 방구나 뽕이나이긴 하다.
물론 앞서 말했듯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어머니'다.


4. 기타 등등

ㄱ. 소품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뭔 놈의 관음 도구들이 그렇게 많은고?
ㄴ. 제목인 '디스터비아'(disturbia)
disturb:방해하다 + 접미어'-ia'를 붙인 조어인 것 같다. 이런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포털의 영어사전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단어다. 이를테면 '디스터비아'는 '유토피아'(Utopia)와 같은 공간적인, 시대적인 분위기를 의도한 조어라는 단순한 해석이 가능할 듯 싶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비전 : ★★1/2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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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쇄살인마의 따스한 에세이 ; [덱스터](Dexter, 2006) 시즌 1 프리뷰

2007. 8. 20. 12:17  |   TV/방송/광고  |   키노씨
#.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합니다.
개인적인 표준으론 스포일러 '거의' 없습니다.



0.
[덱스터]는 놀랄만큼 따스하고, 비정하리만큼 차가운, 정말 흔하게 만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이율배반에 관한 드라마다. 최소한 이 드라마의 매력에 비견할 수 있는 미국 드라마는, 내 부족한 체험치를 물론 인정하지만, [24] 정도에 불과하다. [덱스터]는 최소한, 극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해지고, 늘어지는 [프리즌 브레이크]보다는 훨씬 뛰어난 드라마다.


1.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인 '덱스터 모건'는 연쇄살인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에게 느끼는 건 차가움이 아니라, 따스함이다.
그는, 적어도 내가 본, 가장 인간적인 연쇄살인마다.
드라마는 연쇄살인마라는 공포스럽고, 차가운 질감을 덱스터의 나레이션으로 따뜻하게 감싼다.
그 덱스터의 건조한 듯, 때론 유머러스한 나레이션은 드라마에 온기를 부여한다.

 
2. 이분법의 해체, 그리고 매력적인 이율배반

이야기는 만화적 상상력에 기반해 있다.
"연쇄살인마를 쫓는 연쇄살인마"라는 홍보문구처럼.

[덱스터]는 기본적으로 선악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심정적으론, 선악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하며, 덱스터가 살인하는 대상이 그 도덕률의 마지막 보루처럼, 덱스터가 행하는 살인의 정당성, 아니 덱스터라는 캐릭터에게 최소한의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아무리 케이블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라도, 그리고 19금 딱지가 붙은 드라마라도, 이 드라마를 소비해야 하는 시청자들을 최소한으로 '보호'(?)할 필요는 존재하니까.

그런데 놀라운 건, 드라마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덱스터는 그 도덕의 최소한을 유지하면서, 또 배반한다는 점이다. 그 정점은 덱스터가 운명론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그 운명의 실타래는, 매우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다소간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걸 어쩔 수 없이 [덱스터]의 이야기구조상 가장 큰 얼개이긴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비인간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장 인간적인 드라마




3.   
주인공 덱스터와 그의 연인 리타가 '노말 라이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그 장면 직전에 등장하는 장면과의 대비)는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그 장면은 물론, [아이다호]에서 '노말 패밀리'에 대해 리버와 키에누가 나누는 그 장면 만큼 간절하지는 않지만, 어떤 드라마에서도 쉽게 느끼지 못할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모든 출연자들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특히 덱스터를 연기하는 마이클 C. 홀과 그 연인으로 등장하는 줄리 벤츠('리타'역)는 황홀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비전 : ★★★★★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p.s.
[덱스터] 시즌 1의 에피소드는 모두 12개.
이 글은 예외적으로 민노씨.네에 동시등록합니다.
물론 메타에는 각각 하나의 글만 등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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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 타르코프스키

2007. 6. 28. 10:51  |   감독/배우  |   키노씨
#. [FM 영화음악] 정은임, 정성일씨 한창 날리던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의 기억에 바탕합니다. 주로 정성일씨께서 들려준 이야기들이죠. 기억한 이야기들을 그저 옮기는 수준이에요. 비가 와서요. 예전에 필넷에 썼던 글인데요. 거기에 있던 글은 지우고 좀 줄이고, 추고해서 옮깁니다.




아주 옛날 옛날.. 그래봤자 한 10년쯤 전.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서 쓰는 글입니다.


타르코프스키에게는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요.
아버지가 방랑벽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떠났죠.
어머니는 매일 같이 기다렸어요.
어린 타르코프스키는 하루 하루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 슬픈 여자의 모습을 또 하염없이 바라봤구요.


타르코프스키에게 '물'은 굉장히 특별한 의미인데요.
그건 타르코프스키가 청년시절 취미로 스킨스쿠버를 했기 때문에, 바다, 그러니까 물과 굉장히 친했기 때문에 그랬다고도 하지만... 그 보다는 타르코프스키의 어린 시절, 그 '기다림'을 바라보았던 슬픈 추억들, 그리고 그 슬픔이 만들어낸 소망에 연원한다고 합니다.


어린 타르코프스키는 생각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떻게 만날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렇게 간절히 타르코프스키는 생각했습니다.
그런 타르코프스키에게 비가 내렸죠.

타르코프스키는 생각했습니다.
아, 아름다운 물방울, 저 비..
그래, 저 비라면 아버지이신 하늘과 어머니이신 저 대지를 만나게 할 수 있을거야..


그래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
화면을 채우는 물의 이미지가 있어요.
그건 마치 세상을 모두 연결하고, 모두 어루만지고, 떠나간 아버지를 어머니와 만나게 하고 싶은 어린 타르코프스키의 소망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물..
만남의 이미지..
그건 타르코프스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죠.


비가 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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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간절하면 죽은 나무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단다.. " - [희생], [이반의 소년 시절] 첫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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