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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신기루 - [일루셔니스트] 프리뷰

2007. 3. 9. 00:39  |   프리뷰  |   키노씨

#. 이 글은 프리뷰입니다. 당연히 스포일러(의 불안) 고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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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2006)  108 분. 우리나라 : 2007.03.08. 개봉 

*  네일 버거 
* 에드워드 노튼(아이젠하임), 폴 지아마티(울 경감), 루퍼스 스웰(레오폴드 황태자), 제시카 비엘(소피 공녀) 





낭만적인 신기루 - [일루셔니스트] 프리뷰 http://minocine.tistory.com/entry/TheIllusionist2006



 

0. 에드워드 노튼
역시 에드워드 노튼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를 부여받은 것처럼, 마치 자기가 그 역을 살았던 것처럼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뿐이다. 몇몇 매력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노튼은 마치 허공 위에 뜬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묘사된다. 그건 낭만적이고, 달콤하고, 또 매력적이며, 때론 섹시(--;)하기 조차 하지만... 떠도 너무 떴다.


이 영화의 배경처럼 깔려 있는 '계급 갈등'의 문맥은 '농담'이란게 밝혀진다.


1. 반전

이건 반전의 놀라움이 없는 이상한 반전이다. 아니지. 이런 반전이 종종 있기는 있다. 아무튼 이 영화의 반전은 '놀라운 반전'이 아니라, '흐뭇한 반전'이다. 허허.


2. 제시카 비엘

영화를 보다보면, 아, 참 안이쁘다(정말 안이쁘다가 아니라, 정말 영화가 안 어울려서, 미워보인다 정도의 어감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싶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곤 한다.

이 영화에서 노튼의 상대역이 그런 여자다.
좀 노골적으로,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술하자면, 이 여자 등장하는 장면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치밀어 오른다. : (


3. 계급의식 - 낭만적인 신기루

폴 지아마티('레이디 인 더 워터'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의 연기는 훌륭하다.

남녀주인공의 계급적 벽은 솔직히 '벽'이라고 하기엔, 너무 헐겁고, 또 그걸 극복하는 건 일도 아니다(왜냐믄, 얘네들한테는 '사랑'이 있걸랑. ㅡ..ㅡ;; ). 그건 낭만적인 신기루처럼 쉽게 사라지고, 또 쉽게 극복되는, 그래서 그걸 극복하거나 말거나 그다지 관심을 갖게 되지는 않은 그런 거다.


다만 악당의 부하 노릇을 해야 하는 이 폴 지아마티 아저씨의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이게 이 영화의 나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런데 그 얘기는 물론 내러티브의 '화장술'에 불과한 것처럼 묘사되어 버리고 만다. 내적 긴장은 너무 느슨하게 풀려버리고, 아저씨의 갈등은, 그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제스처 같다.


4. 프레스티지

[프레스티지]가 무겁다면, 이 영화는 가볍다.
[프레스티지]가 딱딱하다면, 이 영화는 뽀송뽀송하다.
[프레스티지]가 여러겹으로 둘러쌓여져 있다면, 이 영화는 홀겹이다.


5. 마술장면
그건 직접 봐야지, 뭐. : )
난 꽤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런데 예고편 너무 많이 보면 눈 버릴지도 몰라요! (조심)


6. 한줄로 말하면?
이 영화는 추리극에 기반한 낭만적인 연애드라만데, 다만 너무 똥폼 잡고 있다.


7. 그래도 추천한다면?
그래도 노튼을 좋아한다면.. 뭐, 어쩔 수 없이 극장에 갈 수 밖에. 크게 후회하진 않을 듯 하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
* 대중 친화도 : ★★★☆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 인상적인 잔상 : 에드워드 노튼 - 표정.
* 지워버리고 싶은 잔상 : 여자 주인공 -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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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축제 - [집시의 시간]

2007. 3. 8. 10:41  |   영화/드라마 단상  |   키노씨

#. 이 글은 그저 단상입니다. 스포일러는 (전혀) 없습니다.




 

1.
누구나 몇 개의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이다. 첫사랑의 기억처럼, 그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아이를 처음 본 그 순간, 그 희미한 초록 대문 앞에 따뜻한 햇빛들이 그 아이를 온통 감싸고, 시간이 정지하는 것 같은.. 그리고 세상이 온통 그 햇빛의 투명하고 따뜻한 노랑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던 그 기억처럼..


2.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집시의 시간]을 본 건.. 아마도 내가 열심히 책을 읽고, 열심히 영화를 보던 그 때인 것 같다. 인터넷에서 그 우리나라 개봉시기를 찾아보니까, 93년이라고 나오던데.. 정말 오래되긴 했다. 종로 [코아아트홀]에서 봤던 것 같다. 물론 혼자서..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아무래도 내 기억이 맞다면, 혼자서, 그런데 [코아아트홀]이거나, 어쩌면 신사동 [씨네하우스]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자기만의 개인적인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런 영화는 [집시의 시간]이거나 [시라노 드 벨주락]이거나 [포레스트 검프]거나 [열혈남아]거나 [중경삼림]이다.


그리고 [집시의 시간]은 언제나 엠비시 에프엠 영화음악과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Ederlezi]란 음악과 함께 찾아온다.. 라디오에 편지나 엽서 '따위'를 보내는 건 정말 한심한 짓거리로 생각하던 나에게도 정말 정성껏 '편지'를 보낸 곳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에프엠 영화음악]이란 엠비시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엔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정은임의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다. 그건 정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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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시간 [Dom Za Vesanje. Time of the Gypsies. 1989. 136분]
에밀 쿠스트리차




3.
[집시의 시간]은 아름다운 영화다.
[집시의 시간]은 아름다운 영화다. 그런데 그걸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면, 그건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게 아름다운 영화라는 건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아는 거니까. 그 영화는 아름다운데, 그게 아름다운 건 거기에 비루한 현실과 그 비루한 현실을 모두 자신의 삶으로 껴앉는 낙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일테지만...


내 기억들, 눈 감으면 몰려오는 그 따뜻하고, 설레는 순간들로 여행하자면, [집시의 시간]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거기엔 아픈 사람들이, 그 아픈 풍경들을 따스하게 만들기 위해, 포기하고, 희생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나는 찰떡처럼 믿고 있는 유머와 낙관의 끈을 놓지 않고, 환하게 웃고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론가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말을 한다. 그건 참 정확한 말이긴 하다. 이 영화는 쿠스트리차의 전매특허인 마술같은 리얼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인거다. 그런데 그건 모두 아는거니까..

그런데 나만의 목소리로, 나만의 풍경으로 이 영화를 채우기에는 내가 가진 언어들이 너무 가난해서.. 정말 이런 경우엔.. '나의 언어'는 너무 가난하다.. 내 마음을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 속에 흐르는 공기들을 모두 숨쉴 수 있도록 풀어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풍경들을 거울처럼 비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아쉬워하기만 하는거다, 난.


4.
쓸쓸한 따스함이란 게 있다면, 그건 어떤 기억의 풍경들일테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그리고 웃으면서 울거나, 울면서 웃을 수 있다면, 아니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면, 그건 [Ederlezi]를 들으면서 나에게 항상 머물렀던, 그런데 내가 찾아가지는 않았던, 그 모든 기억들이, 그 의미들이 나에게 몰려오고 있기 때문일거다.

당신도 스피커의 볼룸을 조금 높이고.. 당신에게 머물었던 의미들이, 다시 당신에게 돌아오기 위해 귀향의 축제를 펼치는 그 아름답고, 슬프지만 따스한 행렬들을 눈을 감고, 맞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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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erlezi]

Same samala oro kelena
Oro kelena dive kenena


Sa o Roma
(Amaro dive, Amaro dive, Ederlezi Ej....)


Sa o Roma, babo, babo
Sa o Roma, babo, o daje
Sa o Roma, babo, babo
Ej, Ederlezi
Sa o Roma, daje


Sa o Roma babo, E bakren cinen
A me coro, dural besava
A a daje, amaro dive.
amaro dive ederlezi.


Edivado babo, amenge bakro.
Sa o Roma, babo. E bakren cinen.
Eeee.. , Sa o Roma babo babo, Sa o Roma babo daje.
Sa o Roma, babo babo, Ederlezi, Ederlezi, Sa o Roma daje.
Eeee.. , Sa o Roma babo babo
Sa o Roma daje, Sa o Roma, babo babo, Eeee..
 
Ederlezi, Ederlezi
Sa o Roma Daje..


호라 춤을 추는 우리는 모두 친구입니다.
호라 춤을 추면서 우린 그 날을 기념하지요.
모든 집시여, 우리 축제일인 에델레지가 되었어요.


모든 집시여, 노인들이여
모든 집시여, 오 어머니들이여..


모든 집시 노인들은 양을 마련하지요
불쌍한 나는 오랫동안 머물러 왔어요.


오 어머니들이여, 우리들의 축제일인 에델레지에
한 마리 양이 우리 부족에게로 끌려 왔고,
집시 노인들은 양을 준비합니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1/2
* 대중 친화도 : ★★★1/2

* 비주얼 : ★★★★★
* 내러티브 : ★★★★

+ 음악 : ★★★★★
+ 연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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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권력 - [왕의 남자]

2007. 2. 26. 07:59  |   리뷰  |   키노씨

#.
짧은 리뷰입니다.
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불안을 염려하시는 분들은 피해주세요. : )



1.
모든 예술이 그런 것처럼 영화도 비유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피아노](제인 캠피언)에서 제국주의 정치경제학(정성일)을 읽어내기도 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연애나 여성주의(유지나)를 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_-; , 언어와 권력과의 함수관계에 주목하기도 한다.

[왕의 남자]도 나는 마찬가지다.
해석은 무한하게 자유니까.
그 해석을 통해 영화는 풍성해진다.
그저 감독의 정답만을 찾아내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쓴다면 그건 정말 따분한 일일거다.


 왕의 남자.jpg
[미디어, 혹은 연극]
왕의 남자 (爾: King And The Clown, 2005)  
이준익. 119 분. 개봉 2005.12.29


2.
각설하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
이게 나만의 해석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어느 영화저널에서 이미 한 이야기인지는 나는 모른다. 그런 불안이 있는거다. 나는 프로도 아닌데, 자존심은 쎄다. -_-; 누가 이미 한 이야기를 그걸 좀더 잘 할 자신도 없으면서 하는 건 싫으니까. 그러니 나는 이 짧은 나의 이야기가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이길 바란다. 물론 영화를 가장 먼저 보고 '선수'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나는 너무 늦게 이 영화를 본 것이다.


3.
각설하고, 이건 설명문에 가까운 영화다.
그게 나의 감상이다. 그건 그런데 [동성애]를 설명하는 영화는 물론 아니고, [미디어와 권력]의 함수관계, 그 공생관계 혹은 그 역학을 설명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정말 노골적으로 [미디어와 권력]의 함수관계를 마치 친절한 설명문을 읽는 것처럼 딱딱 아귀를 맞춰서 풀어내고 있다. 정말 그렇다.


4.
의미심장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각본을 주는거다.
그건 권력이 작동하는 설계도와 같다. 그걸 집행하는 건 왕의 최측근이다. 그러니까 내시의 왕, 장항선이 그걸 한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것, 그건 광대(미디어)다. 온갖 현란한 춤과 안무와 재담으로 그 설계도를 실현한다.

아주 노골적인 장면은 또 있다. 감우성이 그런다.
다들 왕이야기 하니까, 우리도 왕이야기 하자. 그게 여론이다. 그런데 그런 밑바닥의 여론이 어떻게 정략적으로 다시 각색될 수 있는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민초들로부터 출발한 '여론'은 그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며, 영화에서 더 이상 민초들은 보여지지도 않는다. 이건 이제 권력의 상층부에 존재하는 '권력'의 작용과 그 메카니즘에 관한 영화인 거다.


5.
감우성 눈멀다.
이것도 꽤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디어 그 자체이고, 미디어 콘텐츠 그 자체이다. 물론 소스는 왕이고, 왕을 둘러싼 권력이다. 그런데 그는 이제 눈 멀었다.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는 말한다. "이제야 정말 장님 역할 할 수 있게 되었는데.. "

그건 역설이다.
감우성이라는 미디어의 상징은 이제 정말 눈이 감겨서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까.


6.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그다지 나로선 강렬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그건 그저 흥행적인 요소들을 노린 꼼수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석되어도 좋고, 그게 논란이 되어 이야기되면 더 좋고. 그러니까 감독은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표피의 이미지들이 여론을 얻고, 인구에 회자되면 그건 그 자체로 상품성을 갖게 되니까. 나로선 솔직히 왜 동성애 코드가 이 영화를 설명하는, 비평하는 중심적인 주제가 되어야 하는지, 굉장히 의아하다.

이 영화는 권력과 미디어,
그 작용과 그 작용의 최종적인 귀결,
반란이거나 복종이거나, 를 슬프게 보여주고 있다.

광대는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는 순간, 죽어야 한다.
미디어가 진실을 포기하는 순간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건 정말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 별점

* 총평점 : ★★★★ (다섯개 만점)

* 영화적 비전 : ★★★★
* 대중 친화도 : ★★★★½

* 비주얼 : ★★★★
* 내러티브 : ★★★★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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